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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일이 쓸쓸해질 때 / 유인숙

담하(淡霞) 2020. 11. 3. 08:00

  
   

    
  살아가는 일이 쓸쓸해질 때 / 유인숙 
    어느 날, 
    마음 한가득 바람이 일어 
    낙엽 지는 거리로 나서면 
    벌거벗은 채 온 몸을 던져 
    습한 대지 위에 드러눕는 
    나뭇잎 하나를 만날 수 있다 
    이따금, 
    살아가는 일이 쓸쓸해질 때나 
    누군가와 마음을 터 놓고 
    한동안 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 
    땅 위에 처연하게 나뒹구는 
    나뭇잎을 보며 
    고독한 가슴을 쓸어보리라 
    바랜 낙엽은 말이 없어도 
    서로를 부둥켜안고 
    가만 가만히 귓속말로 
    유전(遺傳)을 전해 주는 걸 
    마음으로 깨달아 알 수 있으리라 
    한 생을 살다 문드러진 몸 
    그대로 누워 흙으로 돌아가는 날 
    나뭇잎은 삶을 이루었다 말하니 
    이따금, 
    살아가는 일이 쓸쓸해질 때 
    낙엽 지는 거리로 나서면 
    다음 세대를 위해 
    빈자리 마련하는 
    나뭇잎 하나를 만날 수 있다.
    
    Shadow Dancer / Cynthia Jord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