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슬로우 호머 (Winslow Homer)
(1836~1910 : Watercolor)
거의 독학으로 공부해서
19세기 미국 최고의 화가 중 한 명이라는
윈슬로우 호머 (Winslow Homer / 1836~1910)
작품들 입니다
달빛 (Moonlight / 1874)
그 남자도 그 여자도 말이 없습니다
밀려 오던 물결은 땅에 오르면서 가볍게 몸을 뒤척였습니다
물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밤 바다 달이 떠 올랐습니다
떠 있는 달은 하늘 저편으로 열린 통로이기도 합니다
그 통로를 통해서 빛이 끝없이 내리고 있습니다
바다 위로 반짝거리며 부서진 달빛은 두 사람을 지나
그림자로 숨어들었습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은 바닷가 풍경
물감의 농담만으로도 이렇게 빛을 만들 수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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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머는 보스턴에서 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에너지가 넘치는 사업가였지만
그다지 좋은 결과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호머가 열 세 살 때 소위 한 몫을 잡기 위해
캘리포니아 금광으로 향하는 골드러시 행렬에 참가했지만
실패했습니다
나중에는 유럽으로 건너 가서 한 밑천 잡아 보겠다고 했지만
그 것도 꽝 이었습니다
몸은 바빴지만 생각은 하늘에 있어
뭐 하나 되는 것이 없었던 아버지였습니다
새로운 벌판의 노련한 일꾼
The Veteran in a New Field / 1865
다 여문 밀밭이 거대한 붉은 장벽으로 막아 섰습니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밀밭 활처럼 커다랗게 휜 낫으로
묵묵히 일을 하는 사내의 등은
내려 앉은 햇빛으로 하얗게 빛나고 있습니다
도드라져 보이는 붉은 밀밭 속의 흰색
그래서 쓸쓸해 보입니다
해마다 새로운 밀들이 자라지만 추수하는 사람은 늘 같습니다
노동의 고단함은 반복이 가져다 주는 절망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정직함과 경건함이 있습니다
대지를 굳게 밟고 밀밭을 헤쳐가는 사이 세월이 흐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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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아마추어 수채화가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호머의 첫 번째 미술 선생님이었고
어머니 이상의 영향력을 호머에게 미쳤습니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집을 비운 탓도 있겠지만
강한 의지 꾸밈없는 간결함과 유머 그리고
무뚝뚝한 성격 같은 것은
어머니의 기질을 그대로 물려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호머의 어린 시절은 무척 행복했었다고 하니까
아버지의 빈자리를 엄마가 잘 메워 준 것이겠지요
애디론댁 호수
An Adirondack Lake 1870
뉴욕주에 있는 애디론댁 호수를 건너려는 사내가
문득 발 걸음을 멈췄습니다
잔교를 대신하여 설치된 나무를 건너 노를 든 순간
호수를 건너 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것이죠
사내를 부르는 소리였을까요
호수를 건너 오는 바람이 물결을 흔드는 소리였을까요
아니면 사내의 인기척에 하늘로 오르는 새들의 소리였을까요
넓게 열린 하늘 밑 섬과 섬 사이에 섬이 있고
그 사이를 채운 물은 아득한데
그림 속 가득한 햇빛은 차고 넘쳐
보는 저의 눈을 부시게 합니다
물과 숲이 만나는 곳 그 곳에는 고요가 자리를 잡고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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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머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호머의 아버지가 신문에서
석판화 도제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게 됩니다
그는 아버지의 주선으로 석판화 도제로 2년간 일을 하게 되는데
아주 지루한 작업의 연속이었습니다
1857년 그는 하퍼스 매거진의 삽화가로 입사합니다
그가 하는 일은 사진을 보고 그림의 선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간결한 선과 강렬한 명암 대비를 익혔는데
훗날 그가 화가로 성장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대답을 기다리고
Waiting for an Answer / 1872
풍속화가들 작품 중에는 "대답을 기다리고 있어" 라는
주제의 작품이 자주 보입니다
그만큼 재미있는 주제이기 때문이겠지요
풀을 베고 있는데 여인이 찾아 왔습니다
나무 그늘에 선 여인이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지난번 내가 이야기 했던 것 생각해 봤어
무슨 이야기!? .... 그거!.....!
물어보는 여인은 꼭 그 대답을 듣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남자는 알면서도 선뜻 대답을 안 하는 표정입니다
부끄럽겠지요!... 그래도 걱정은 안 됩니다
푸른 물과 어우러져 세상은 온통 초록이니까요
햇빛 아래 붉게 그을린 남자의 팔뚝을 보니
아내 고생시키지 않는 좋은 남편이 될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내가 원하는 답을 기다리는 동안
가슴이 사정없이 두근거렸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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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스물 세 살의 나이로 호머는 뉴욕에 개인 화실을 엽니다
그 후 프랑스에서 태어나 미술 교육을 받고 미국으로 건너온
프레데릭 론델에게서 1년 정도 간단하게 회화를 배웠는데
1년 정도 독학을 하고 난 뒤
놀라운 수준의 유화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타고난 재주는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즐거운 나의 집
Home Sweet Home / c.1863
남북 전쟁 당시 군인들의 야영 장면입니다
젖은 모포를 햇빛에 말리고 있는 동안 음식을 끓이고 있습니다
총을 벗어 놓은 군인은 평범한 자연인입니다
죽여야 내가 산다는 날 선 각오와 피비린내는 간 곳이 없고
당장 처해 있는 상황은 의식주에 관한 것입니다
그림 속 두 사람의 머리 속이 복잡한 것 같습니다
다시 시작되어야 할 전쟁에 대한 생각도 있겠지만
두고 온 식구들에 대한 것도 있겠지요
때문에 총알과 칼이 난무하는 전쟁터에 비하면
열악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지금 이 곳이 즐거운 나의 집이 되는 것이고
또 한 편으로는 두고 온 즐거운 나의 집에 대한 생각이
구름처럼 솟아 오르는 곳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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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재주를 본 호머의 어머니는
그를 유럽으로 유학을 보내고자 했지만
하퍼스 위클리의 요청으로 호머는
당시 남북 전쟁이 진행되고 있던 전선으로 파견되어
전장의 장면을 스케치하는 일을 맡게 됩니다
전쟁터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은 험난한 일이었지만
호머는 스케치한 작품을 유화로 옮겼고 그
작품을 내셔널 아카데미에 출품하여
사람들로부터 놀라운 반응을 얻습니다
채찍을 끊어라
Snap the Whip / 1872
호머가 자신의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했다는 이 작품은
‘Crack the Whip’ 이라고도 부르는 아이들 놀이입니다
한 아이가 서로 손으로 잡고 있는 긴 줄 둘레를
이리 저리 움직이면 꼬리가 그 아이를 따라 움직이는데
갑작스럽게 방향을 바꾸게 되면 줄도 끊어지고
더러는 넘어지는 놀이입니다
그림 속에도 끝에 있는 아이들이 결국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제 조금씩 가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풀 밭 위
아이들 웃음소리는
병풍처럼 서서 아이들을 내려보고 있는 산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이제 메아리가 되어 계곡을 울리겠지요
기분 좋게 아이들 모습을 보고 있는데
우리 나라 아이들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 아이들은 그림 속 시대보다
더 잘 살고 있을까요... 더 현명할까요...
그리고 그림 속에 들어가 꼬리 노릇을 하면
이 울적한 마음을 털어 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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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지나간 후 호머는 작품의 주제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 올리고 어린 아이와
젊은 여인들이 등장하는 장면에 주안점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이 때 미국 화단의 흐름은 전쟁으로
엉망이 된 미국을 추스르고 희망을 갖기 위해
어린아이와 평화로운 장면들의 묘사에 중점을 두었었지요
호머는 화가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하자마자 절제된 감정과 대상에 대한 깊은 이해
그리고 뛰어난 기법을 바로 보여 주었습니다
소년들
Boys in a Pasture / 1874
초지에 앉아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여유롭고 향기롭습니다
아이들 시선이 닿는 곳.. 풀어 놓은 가축들이 있겠지요
모자 밑으로 햇빛에 붉게 그을린 얼굴과 맨 발이 건강해 보입니다
나중에 너는 뭐가 될 거니..
글쎄.. 나는 큰 땅을 사서 가득 말을 풀어 놓고 기르는
목장 주인이 되고 싶어.. 너는..
나는 세상 끝까지 가보고 싶어
저 벌판 너머 그리고 산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늘 궁금하거든
아이들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습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말을 키우겠다던 넓은 땅은 작은 아파트로 변했고
세상 끝까지 가겠다던 꿈은 회사와 집을 오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의 꿈은 저렇게 초지 위에서 끝없이 뻗어 나야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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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서른 한 살 되던 해 호머는 파리에서 1년간 머뭅니다
당시 파리는 인상파와 같은 새로운 미술 사조가
태동하기 시작했지만 호머의 관심은 농촌의 삶을 묘사한
밀레와 바르비종파에 있었습니다
이미 미국에서부터 야외에서 작업을 해 왔던 그에게
외광파의 기법은 흥미가 없었겠지요
다만 인상파가 그랬던 것처럼 그도 야외의 빛을 화폭에 담았는데
인상파와는 구별되는 호머 자신만의 기법이 사용되었습니다
바람이 거칠어 지네
Breezing Up / 1876
오른쪽 하늘에 먹구름이 나타나더니
물결이 거칠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배가 한 쪽으로 기울었지만 배에 탄 아이들은 아주 느긋합니다
활처럼 휜 돛은 바람을 가득 안고 배를 끌고 가는데
앞 쪽의 두 아이는 미동도 없는 모습입니다
어른이 돛으로 방향을 잡는 동안 끝에 앉은 아이는
아주 여유롭게 키를 잡고 있습니다
모두 바다의 사나이 들입니다
거칠어 지기 시작하는 바다이지만
아이들 때문에 보는 저도 느긋해졌습니다
다시 생각해도 멋진 아이들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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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부터 호머는 본격적으로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타고난 재주가 이 때 또 빛을 발합니다
물감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났던 그는
확신에 찬 자연스러운 기법을 이용 작품을 제작합니다
비평가들은 그의 수채화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지만
그의 작품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판매량이 늘면서
그의 재정 상태도 좋아졌습니다
1875년 호머는 그 동안 해왔던 상업 미술을 접고
수채화와 유화만 그리기로 결심합니다
이제 여행을 할 때면 호머는 반드시 화구를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상큼한 바람
Fresh Air / 1878 / Watercolor on paper
양떼를 몰고 언덕 위에 오르자 상큼한 바람이 불어 왔습니다
날리는 옷자락과 모자의 리본이 소녀의 모습을 가볍게 하고 있습니다
저렇게 언덕에 올라서면 마음도 가벼워집니다
아마 머리와 몸 어딘가에 쌓여 있던 답답함 들이
바람에 날려 가기 때문이겠지요
자세를 보니 소녀의 마음 속에 아려함이 차오르는 것 같습니다
본능처럼 그리움도 함께 한 소녀의 몸 위로
맑은 햇빛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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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후반 호머는 여인들에 대한 실망으로 감정의 혼란을 겪은 뒤
뉴욕 생활을 접고 글로스터로 이사 합니다
어떤 관계의 여인들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결혼을 생각하고 사귀던 여인과 헤어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후 그가 결혼 했다는 기록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사를 갈 정도였으니 상처가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바다와 붙어 있는 글로스터로 옮겨 온 호머는
어부들과 바다 그리고 변화무쌍한 바다의 날씨를 관찰하면서
바다에 대해 애정을 갖게 됩니다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힘을 바다로부터 얻은 것이죠
어부의 가족
Fisherman's Family / 1881 / Watercolor on paper
바다를 향한 단애에서 어부의 가족들이 바다를 살피고 있습니다
허리에 손을 댄 여인의 표정이 심각합니다
조금이라도 먼 곳을 보기 위해 차마 앉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바다에 나간 남편이 아직 돌아 오지 않았을까요
살아 남기 위해서 바다로 향했던 사람들이
간혹 죽어서 돌아 오는 곳이 어촌의 삶이기도 하지요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바다는 낭만이지만
그 곳에 뿌리를 내린 사람들에게는 생사의 길이 미로처럼
펼쳐진 곳이기도 합니다
아주머니 걱정 마세요
저기 멀리 검은 연기를 힘차게 올리며 나가는 배처럼
아마 그렇게 힘차게 돌아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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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 이후 그의 작품에서
상류층 여인들의 모습은 거의 사라집니다
대신 그 자리에 일하는 여인들의 모습이 자리를 잡습니다
호머는 아예 영국의 해안 마을
컬러코트 Cullercoats 로 자리를 옮깁니다
1881년부터 1882년까지 컬러코드에 거주하면서
해안가에서 벌어지는 잔잔하지만 그러나 치열한 삶의 모습들을
보게 되고 그 것들을 작품에 담기 시작합니다
이 주제는 그 후 그가 계속 추구하는 방향이 됩니다
작품의 크기는 커졌고 장면들의 묘사는 더욱 신중해졌습니다
미국적인 것보다는 인류 보편적인 것이
새로운 스타일로 표현되었습니다
호머의 작품 세계가 크게 변화한 것이죠
생명줄
The Life Line / 1884
산 같은 파도가 두 사람을 삼킬 듯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이미 여인은 기진 맥진 한 모습입니다
두 사람의 몸무게를 지탱하는 도르래에 걸린 가는 줄이
축 늘어졌습니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파도의 거친 울음소리는
죽음의 입구에서 들리는 소리입니다
여인을 안고 있는 팔에는
삶을 위한 필사적인 힘이 들어가 있습니다
별일 없겠지요...
맞서야 할 상대는 자연이 아니라
마음 속에 있는 두려움과 교만함입니다
그리고 지금 필요한 것은 살아야겠다는 간절함입니다
나는 지금 어떤 생명줄을 잡고 바다를 건너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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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11월 미국으로 돌아 온 호머는
수채화 전시회를 개최합니다 평론가들은 즉각
그의 작품에 거대한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다음 해 호머는 프르츠트 해협에 있는 집을 사서
이사를 했는데 바다와의 거리가 30m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 곳에서 바다와 관련된 그의 대표작들이 제작됩니다
이 후 그의 별명은 미술섬에서 살고 있는
미국판 로빈슨 쿠르소 였고
붓과 함께 사는 은둔자 가 되었습니다
평론가들의 평은 좋았지만
곱고 화려한 살롱 작품에 익숙해진 대중들의 반응은
그저 그랬습니다
작품이 팔리는데도 몇 년씩 걸렸고
겨우 400불에 팔린 작품도 있었습니다
역류
Undertow / 1886
원래는 해안에서 바다로 물러나는 물결을 말합니다
밀고 들어 오는 물결은 사람을 해안가로 데려 오지만
나가는 물결은 사람을 바다로 끌고 나갑니다
두 명의 여인이 역류에 휩쓸려 나가는 모습을 본 구조대원이
뛰어 들어 여인들을 구하는 모습입니다
다른 여인을 끌어 안고 있는 여인과
구조대 장비를 잡고 있는 여인의 모습에서
살아야 한다는 본능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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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머가 묘사하고 싶어 했던 주제 중의
하나는 이런 영웅적인 모습도 있었습니다
이 무렵 호머의 평생 후원자였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납니다
검소하게 살았지만 주머니 사정이 힘들면 부유하게
살고 있던 동생이 기꺼이 도와 주었고
동생의 아내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
호머에게 가장 가까운 여인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일에 남이 끼어 드는 것을 몹시 싫어했던 호모에게
동생 부부는 그를 가장 잘 이해 하고 도와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서풍
The West Wind / 1891
방학 때 간혹 탐진강 근처에 사시는 이모님 댁을 가곤 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탐진강 둑을 따라 1시간 남짓 걸어가야 했는데
강 오른쪽으로 펼쳐진 들판을 멍하게 서서 봤던 기억이 납니다
들판을 건너 오는 바람을 온 몸으로 맞고 있으면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났습니다
아마 바람에 실려 오는 것
그리고 실려 가는 것 들 때문이었겠지요
나이 들어도 그 강 둑이 떠 오릅니다
이제는 잘 닦인 길이 이모님 댁 앞까지 이어져
걸어야 할 일이 없어졌지만 그 풍경은 사진처럼 남아 있습니다
바람은 하늘과 땅을 한 가지 색으로 흔들고 있는데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옷을 입은 둑 위의 여인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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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겨울 호머는 센츄리 메거진의 요청으로
플로리다와 쿠바 그리고 바하마를 여행합니다
이 여행을 통해 그는 재충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마치 고갱이 타히티에서 새로운 세계를 이뤘듯이
그의 작품에 대해 평론가들은 반응도 좋았습니다
그러나 이 번에도 역시 대중들에게는
너무 앞 선 작품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관객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많지요
높은 파도
High Tide / 1899
갑자기 밀려든 파도 때문에 그만 모두 젖고 말았습니다
젖은 치마를 쥐어 짜는데 바닷물이 후드득 떨어집니다
앉아서 신발을 털고 있는 아이에게 물이 튀었겠지요
저쪽에 가서 하면 안돼?
올려다 보는 얼굴에는 못마땅함이 가득한데
같이 간 강아지도 신기했던 모양입니다
바닷가에 가면 자주 만나는 풍경이죠
살다가 뜻하지 않은 물을 뒤집어 쓰는 것이 어디 한 두 번인가요
불편함은 잠깐이고 햇볕에 말리면 아무것도 아닌데
혹시 다시는 바다에 가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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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이 되면서 호모의 작품이
대중들로부터 환영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작품이 판매되는 가격도 올라갔고
이런 저런 부수입도 늘었습니다
카나다와 카리비안을 여행하는 동안에도
그의 수채화 작업은 계속 되었습니다
1910년 일흔 넷의 나이로 호머는
바다가 바로 앞에 있는 프로이츠 화실에서 숨을 거둡니다
바다를 통해 힘을 얻었고
바다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던 그의 마지막 순간도
바다는 3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W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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