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詩

수선화에게 - 정호승

담하(淡霞) 2021. 12. 27. 08:39

수선화에게 - 정호승
울지 마라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
내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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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자각과 정화 (고명수 (시인, 전 동원대 교수)
인간은 본질적으로 고독하다. 
‘고뇌와 고독의 전령사’쇼펜하우어는 
그의 명저 『부록과 첨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누구나 오로지 혼자일 때만이,
온전히 그 스스로가 될 수 있다. 
고독을 사랑하지 못하는 자는 자유를 사랑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단지 혼자일 때만이, 인간은 자유롭기 때문이다.
고독은 인간의 본질적인 숙명이기 때문에 
이를 피하려고 할 때 인간은 자유를 잃게 되고
누군가에게 종속되며 번뇌에 빠지게 된다.
고독할 때 인간은 그 스스로가 되고 자유를 얻는 것인데, 
왜 사람들은 고독을 피하려 스스로 시들어갈까? 
위의 시는 그렇게 고독을 피하여 시들어가는 수많은 군상들에게 
냉철한 존재의 본질에 대한 자각과 함께 ,
상처 입은 마음을 달래주는 감동적인 울림을 줌으로써 
교훈(utile)과 기쁨(dulce)이라는 문학의 고유한 기능을 발휘한다
이 시는 깊은 사유를 통해 이러한 존재의 본질을 깨달은 시인이 
외로움 때문에 울고 있는 많은 상처 입은 독자들에게 
담담하게 그러나 따뜻하면서도 자상한 어조로 
마치 스님이 제자를 타이르듯이 말하고 있다. 
인간 존재의 본질적 고독을 일깨우면서 화자는
그 외로움을 회피하려고 하지 말고, 
또 부질없는 기대를 하지 말고 그것을 견디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즉 직면(confrontation)하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고독은 나 혼자만이 지닌 괴로움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 이를 테면 ‘가슴검은도요새’라든지 
‘종소리’ 혹은 ‘산그림자’심지어 ‘하느님’까지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린다고 말함으로써
시를 읽어가다 보면 독자들은 어느새 따뜻한 위안을 받게 된다.
아, 이 세상에 나만 외로운 게 아니구나,
모두 다 외로운 존재들이구나,
이렇게 존재의 본질을 자각할 때,
주위의 모든 존재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고 
그들과의 동질감을 느끼면서 
고독으로부터 초래되는 우울감을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이런 것이 심리치료에서는
CBT, REBT와 같은 인지행동치료에 해당한다
. 
실제로 필자가 지도한 워크숍에서 한 참가자는 
이 시를 읽고 한없이 울고 났더니 
마음이 매우 편안해졌다고 고백한 바 있다.
마음속의 '미해결과제(unfinished business)'들이 
이처럼 예술을 통하여 해소될 때 정화작용이 일어나
마음의 평형을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