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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사상

담하(淡霞) 2019. 6. 28. 00:51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사상
최근 어린이를 상대로 성폭력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성폭력은 
연령을 불문하고 엄청난 아픔을 주지만 특히 어린 시절에 그런 일을 겪는 것은 
아이의 일생에 걸쳐 커다란 상처로 남을 것입니다. 저는 이 사건을 접하면서 
새삼 영국의 여류소설가 버지니아 울프가 떠올랐습니다. 박인환의 시(詩)
"목마와 숙녀"에도 등장하는 버지니아 울프는 어린 시절에 당한 성적 학대에 대한
 영향으로 평생 동안 성을 혐오하고, 정신병에 시달리다 자살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작가이자 교수였던 아버지는 첫째부인과 상처하고 둘째부인을 만나 결혼해서
버지니아 울프를 낳았습니다. 그녀가 겨우 여섯 살 때 큰 의붓 오빠에게 성추행에 
시달리기 시작하면서 불행이 찾아들었습니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성추행에 시달리면서 
성에 대한 수치심과 혐오감으로 성에 관련된 모든 것을 배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사망한 후인 13세 때에는 작은 의붓오빠의 못된 짓에 시달려 거의 미칠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 후 그녀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무서웠고 정신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났습니다.  30살이 되던 해 그녀의 앞에 나타난 
"네오나르도 울프"는 그녀의 까다로운 결혼조건을 수락하면서 그녀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녀의 결혼 조건은 두 가지였는데...평생 부부생활을 않겠다는 것과 남편이 직업을 버리고 
글을 쓰는 자신을 지원해 달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해도 이런 조건을 받아들이고 
결혼 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더욱이 지금으로부터 백년 전의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를 생각하면 너무나 파격적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녀의 남편은 결혼을 해서 
평생을 그녀의 건강을 돌보면서 출판사 경영을 통해 그녀의 작가 생활을 지원했습니다. 
그녀는 결혼하면서 정신적으로 안정을 찾아 결혼 후 3년만인 1915년 ‘출항’을 출판하였고, 
1919년에는 ‘밤과 낮’을 간행했습니다. 1925년에는 ‘댈러웨이 부인’이 큰 인기를 끌었고 
1927년에는 ‘등대로’, 1928년에는 ‘올랜도’를 잇달아 발표하면서 D.H로렌스와 함께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작품에는 여성의 지위향상에 헌신해 온 
자신의 사상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어 지금도 페미니즘문학의 대모로 서구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러나 버지니아 울프는 ‘인간 모두가 평등하게 해방돼야 비로소 여성도 
해방될 수 있다’는 신념에서 페미니즘이라고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그녀의 작품은 ‘인간 내면에 흐르는 의식을 치밀하고 정교하게 표현’하였습니다. 
의식의 흐름 따라 울프가 추구한 주제는 결국 「인생이란 무엇인가」였다고 합니다. 
그녀의 삶을 이해하려면 그녀가 살았던 시대를 이해하여야 합니다. 그녀가 살던 
시대에는 여자는 대학 입학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그녀의 아버지가 
케임브리지대 교수여서 아버지 서재에 있던 많은 서적들을 통해 희랍어와 러시아어를 
배웠으며, 여러 종류의 서적을 읽어 작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책은 그녀에게 작가의 길로 들어설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은 물론 그녀에게 닥쳐 온
 의붓오빠들의 못된 짓을 그나마 견딜 수 있었다고 그녀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투신한 오즈강
그녀는 정신병으로 평생을 시달리다 59세가 되는 해에 허탈감과 환청, 
정신이상 발작에 대한 공포심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자택 인근 오즈강에 투신하여  
자살했습니다.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정신병이 틀림없지만, 정신병을 일으킨 
원인은 바로 어린 시절에 겪은 성추행과 성폭력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결국 
그녀의 어린 시절의 성적 학대에 대한 상처는 그녀 생의 모든 것을 결정하였습니다. 
그녀의 결혼생활에 성이 배제된 것도, 여성지위 향상에 헌신한 것도, 페미니즘 문학의 
대모가 된 것도 그리고 말년에 정신질환으로 자살한 것도 성적 학대 때문이었다면 
과장된 것일까요?
그녀의 유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다시 미쳐가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껴요. 
우리는 그 끔찍한 일을 다시 겪을 수 없어요.
그리고 이번은 회복될 수 없을 거예요. 
환청이 들리기 시작하고, 집중할 수가 없어요.
그렇기에 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하려고 해요
당신은 제게 가능한 가장 큰 행복을 선사했지요
당신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어요
두분은 이 끔찍한 병이 오기 전까지는 더 행복할 수가 없었을 거예요.
저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요.
저도 알아요. 제가 당신의 삶을 망치고 있다는 것을.
제가 없다면 당신은 자신의 일을 돌볼 수 있어요.
당신도 알게 될 거예요.
전 지금 이것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잖아요. 읽을 수도 없어요.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전 당신에게 제 인생의 모든 행복을 빚졌다는 거예요.
당신은 제게 한결같이 인내하고 대단히 친절하게 대해 줬어요.
전 그걸!  모든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기를 원해요.
만약 누군가 저를 구할 수 있었다면 그건 당신이었을 거예요.
당신의 확실한 선의를 제외한 모든 것이 제게서 사라졌어요.
이제 더는 두분의 인생을 망칠 수 없어요.
두분도 우리 모두 함께였을 때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겠지요
(버지니아).

버지니아 울프 유서
박인희의 詩 낭송으로 더 알려진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에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죽음을 애도하고 있습니다. 
시의 첫연과 중간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어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져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어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박인환은 이 시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삶과 죽음을 통해 인생의 허무감을 제시하고 
그것을 전쟁으로 인한 사랑과 인생, 문학의 죽음이라는 우리 현실에 비유적으로 
관련시키고 있습니다.(옮김)

각종 범죄, 탈선 등 사회적인 병리현상의 많은 부분이 성 문제 때문에 일어납니다. 
정부에서 경찰의 숫자를 늘리고 범죄를 엄단한다고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능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억누르고 예방한다고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본능을 자극하는 매체는 이미 통제가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루트를 통해 전파되고 있습니다. 반면 본능을 승화시키고 해소할 수 있는 
사회적인 방법들은 점차 축소되어 가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이 사회를 성범죄로부터 
벗어나게 할 것은 무엇인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성범죄가 
얼마나 사람의 인격을 파괴하고 정신을 황폐화시키며 삶을 왜곡시킬 수 있는지를 
버지니아 울프의 생을 통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옮김).


버지니아 싸인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
1882년 본명 애덜린 버지니아 스티븐, 영국 켄싱턴 출생 
1895년 어머니의 죽음. 충격으로 정신 이상을 겪음
1905년 <타임>지 문예부록에 기고, 1912년 레오나드 울프와 결혼 
1919년 <밤과 낮> 간행, 1923년 톨스토이의 <사랑의 편지>를 번역
1927년 <등대로> 간행, 1937년 <세월> 간행 
1939년 리버플 대학에서 명예 박사 학위 수여, 그러나 울프는 거절함
1941년 산책 중 실종됨, 시체로 발견. 유작 <막간> 간행 
 내 상처를 이해해 준 그대에게 
흐르는 저 강물을 바라보며 당신의 이름을 목놓아 불러 봅니다. 레너드 울프! 
제 처녀 때의 이름 버지니아 스티븐이 당신과 결혼하면서 버지니아 울프가 된것을 
저는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제 나이 예순, 인생의 황혼기이긴 하지만 
아직 더 많은 일을 할수 있는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할 생각입니다. 
제 자살이 성공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우리 부부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었을 거라고 
입방아를 찧을지도 모르겠어요. 아이도 없는 터에 남편의 이해부족, 애정 결핍 등 
이런저런 얘기가 나올까 솔직히 두렵습니다. 이 유서는 당신이 엉뚱한 구설수에
 휩싸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쓰는 것이랍니다.
1912년 결혼한 이래 30년 동안 제가 진정으로 사랑하였고, 저를 진정으로 
아껴 주었던 "레너드"! 그 동안 차마 얘기하지 못했던 제 생애의 비밀을 
이 유서에서 당신께 말하려 합니다. 저의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은 첫 번째 아내가 
정신질환에 시달리다 죽자 변호사 허버트 덕워스의 미망인 줄리아와 재혼을 합니다. 
속된 말로 홀아비와 과부의 결혼이었던 거지요. 제 어머니 줄리아는 이미 네 명의 
자식이 있는 상태였고, 아버지는 전처 소생의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재혼한 두 사람 
사이에서 오빠 토비와 언니 바네사, 저 그리고 동생 애드리안이 줄줄이 태어났지요.
그리 넓지도 않은 집에서 아홉 명 아이와 두 어른이 아옹다옹하며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어머니는 봉사정신이 무척 강한 분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병구완하러 다니느라 
정작 집에 있는 아이들은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셨지요. 큰애가 작은애를 알아서 
잘 돌보겠지 하고 낙관적으로 생각하셨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제 생애의 불행은 여섯 살 때부터 시작됩니다. 큰 의붓오빠인 제럴드 덕워스가 
어머니 없는 틈을 타 저한테 못된 짓을 하는 것이었어요. 자기와는 신체 구조가 다른 
저를 세밀히 관찰하고 만지고. 그 시절부터 저는 몸에 대한 혐오감과 수치심을 갖게 
되었습니다.나아가 성에 관련된 것이라면 무조건 배격하는 마음도 갖게 되었지요
불행은 설상가상으로 몰아 닥쳤죠. 어머니는 이웃사람을 간병하다 그만 전염이 되어 
제가 열 세 살 되던 해에 돌아가셨습니다. 저를 잘 이해해 주던 이복언니 스텔라도  
2년 뒤에 죽었는데 바로 그때 아버지마저 암에 걸려 몸져눕고 말았습니다. 
저와 언니 바네사가 신경질이 나날이 심해지시는 아버지의 병간호를 맡아서 하는것이야 
그래도 힘든 일이라 생각하지 않고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춘기를 
막 넘긴 작은 의붓오빠 조지 덕워스가 저한테 갖은 못된 짓을 하는 것이었어요.
그렇지 않아도 의지할 데 없어 심리적으로 불안했던 저는 무방비 상태에서 그런 일을 
수시로 당하고는 거의 미칠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집에 책이 없었더라면 전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버지의 전처처럼 죽지 않았을까요? 
아버지는 총 65권에 달하는 대영전기사전의 책임 집필자여서 집에 책이 엄청나게 많았고, 
저는 현실의 불행에서 도피하기 위해 책에 파묻혀 지냈습니다. 저는 당신과 결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너무나 무서워했고, 사춘기 시절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당신이 청혼했을 때 저는 두 가지를 요구했습니다. 보통 사람 같은 
부부생활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작가의 길을 가려는 나를 위해 공무원 생활을 포기해 달라는 것. 
세상에 이런 요구를 하는 여자에게 자신의 성적 욕망을 버리고 사회적 지위를 팽개치고 
오겠다는 사람은  "레너드" 당신 이외엔 없을 거예요. 고통스런 과거를 끊임없이 반추하며 
제가 작품을 쓰는 동안 당신은 출판사를 차려 묵묵히 제 후원자 노릇을 해 주셨지요.
저는 지난 30년 동안 남성중심의 이 사회와 부단히 싸웠습니다. 오로지 글로써. 
유럽이 세계 대전의 회오리바람 속으로 빨려들 때 모든 남성이 전쟁을 옹호하였고, 
당신마저도 참전론자가 되었죠. 저는 생명을 잉태해 본 적은 없지만 모성적 부드러움으로 
이 전쟁에 반대했습니다. 지금 온 세계가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제 작가로서의 역할은 
여기서 중단되어야 할 것입니다. 추행과 폭력이 없는 세상, 성차별이 없는 세상에 대한 꿈을 
간직한 채 저는 지금 저 강물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사상 
버지니아 울프
[의식의 흐름]을 탁월하게 표현한 영국 여류작가 버지니아 울프 에게 본격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대표선집이 있다. 이 선집에는 소설「등대로」와「댈러웨이 부인」
사회비평집에 가까운 "자기만의 방"외에 그가 남긴 평론과 일기 등도 포함된「전집」에 
가깝다.번역은 울프에 대한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4명의 전공자가 맡았다.
의식의 흐름이라는 창작 기법 
"개인의 발견"은 20세기 초 유럽의 한 정신사적 현상이었다.근대정신의 한 귀결점인 
1차 세계대전은  인간과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흔들었고,확신에 차서 나부끼던 
온갖 플래카드들을 촌스러워 보이게 만들었다.근대를 지탱했던 사회적·역사적 인격이 
물러난 자리에 생물학적이고 심리학적인 개인이 들어섰다.프로이트나 프루스트 이후 
의식이란 알 수 없는 열정과 끊임없는 무의식의 작용 아래 놓여졌다.또한 부르주아 
윤리는 새로운 계급분화와 더불어 찢겨져나갔다.
버지니아 울프(1882∼1941)의 생애가 걸쳤던 곳도 바로 이 지점이었다.
이런 환경은 울프에게 ‘지식인 여성으로서의 자아’를 발견하게 했고,그는 세기 초의 
유행 속에 머물렀을 뿐 아니라 문학과 삶을 통해 이 유행의 한 전위를 이끌어나갔다.
이같은 전위는 물론,오성과 신성의 빛을 남성이 독점했던 근대적 남성 쇼비니즘이나
 “여성의 영광은 화제에 오르내리지 않는 데 있다”는 부르주아 윤리,이런 
당대의 상식들과의  부단한 싸움을 통해 쟁취한 것이다.
이것이 울프로 하여금 20세기 지성사에 두가지 중대한 기여를 하게 만들었다.
그의 문학은,의식의 흐름이라는 새로운 창작기법으로,다른 한편으론 
페미니즘문학을 통해 이후 세계문학사에 영향을 드리웠다.
버지니아 울프와 페미니즘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딸로 태어난 울프는 당시 여성에게는 대학 입학이 허용되지않아
주로 아버지의 서재에서 희랍어와 러시아어를 익혔다.물다섯살에 처녀작「출항」을 쓰고,
평론을 발표하기 시작한 울프는 20세기초 TS엘리어트와 경제학자 케인즈 등이 모였던 
「블룸스베리그룹」의 핵심 멤버이기도 했다.정신질환으로 1941년 자살하기까지 
소설 9편과 평론,희곡,에세이 등을 남겼다. 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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