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리흐 스메타나(Bedrich Smetana)
(1824-1884)
String Quartet in E minor, "From my Life"
(현악 4중주 / 나의 생애에서)
체코의 음악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는
베드리히 스메타나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무엇인가에 대한
형언키 어려운 동경을 가지고 작곡했다는
그의 자전적인 음악, 현악 4중주 in E minor, "From My Life"
"(나의 생애에서)"입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그 무엇을
끊임없이 동경하는 존재인 것같습니다.
The Jasper String Quartet이 연주합니다.
1악장 : Allegro vivo apposionato
2악장 : Allegro moderato a la Polka
3악장 : Largo sostenuto
4악장 : Vivace
프라하의 유명한 다리 카를교(Charles Bridge) 입구에서
베드리흐 스메타(Bedrich Smetana)
(1824-1884)
체코의 국민 음악가 베드리히 스메타나
그의 교향시 "나의 조국"으로도 너무나 유명하다.
귀머거리가 된 음악가라면 누구나 제일 먼저 베토벤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가 심포니 No. 9 in D minor를 작곡하여
직접 지휘를 마쳤을 때
객석에서 터져 나오는 박수 소리를 듣지 못하자
누군가가 그를 객석을 바라보게 했다는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우리를 감동시킵니다.
그러나 체코의 민족 정신을 음악으로 표현하여
체코의 민족주의 음악의 선구자이며
체코 음악의 아버지로 체코인 뿐만 아니라
모든 음악 애호가들로부터사랑받고 있는
베드리흐 스메타나가 말년에
귀가 안들리게 되었다는 것을 아시는 분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교향시 <나의 조국>도 청각을 상실하기 전 후
(1874-1879)에 작곡된 곡입니다.
어려서부터 음악 재능이 뛰어나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음악가의 길을 택한 스메타나는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에게 주권을 빼앗긴 체코의 프라하에서
활동을 하다가 여러가지 정치적인 이유로 조국을 떠나
스웨덴에서 음악가로서 성공하지만
조국의 문화 운동이 일어나자 다시 조국에 돌아와
체코의 국민 음악 운동의 선구자로
피아노곡, 오페라, 오케스트라곡, 실내악곡,
성악과 합창곡 등을 작곡한 체코 최고의 음악가입니다.
그러나 50세에는 귀병이 나서 현기증과 환청 현상이
심해져서 의사로부터 활동중지 지시를 받았다고 하니
그의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베토벤의 심정을 비로서 이해하지는 않았을까...
짐작이 됩니다.
우리의 신체 중에 어느 하나
귀중하지 않은 기관이 없겠지만
그래도 화가에게 가장 중요한 기관이 눈(eyes)이라면
음악가에게는 귀(ears)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1876년 프라하를 떠나 딸이 살고 있는
야브케니치(Jabkenice)..,프라하에서
약 60 km 떨어진 곳으로 가서
그곳에서 그는 절망과 체념, 고독에 시달리면서도
작곡에의 열정을 떨칠 수가 없어서
10월부터 이 현악 4중주곡의 작곡을 시작하여
12월 29일에 완성하였다고 합니다
누구나 인생의 노년이 되면 많은 후회와 회한으로
자신을 뒤돌아 보게 됩니다.
귀를 치료하느라 애를 썼지만 끝내 청각을 잃게된
스메타나도 그제서야 네개의 악기
(두대의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를 통하여
자전적인 음악인 현악 4중주로
자신의 생애를 이야기하고 싶었나 봅니다
"질병이 예기치 않았던 창작적 요소를 성숙시켰다"라는
음악 평론가들의 평이 있지만
"나의 인생의 추억과 완전한 청각 상실이라는
비극적 결말을 그렸다"라고
그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말했다고 합니다.
또한 스메타나는 자신의 악보 뒤에도 이렇게 적었다고 합니다.
"나의 청년 시절의 강력한 예술 애호, 로맨틱한 분위기,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무엇인가에 대한
형언키 어려운 동경 거기에다가 다가 올 불행에 대한
예견까지도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그는 4악장으로된 현악 4중주
"나의 생애에서(From My Life")에서각 악장마다
즐거웠던 청춘의 나날, 또 아내와의 행복한 추억,
불안과 좌절이 연상되는 말년의 심경을 담고 있습니다.
그의 생애를 돌아보면
가정적으로도 어린 딸을 둘이나 질병으로 잃고
첫번째 아내도 병으로 사별하고 재혼을 하는등
결코 평탄 하지만은 않은 것같습니다
그러한 모든 고통과 실의와 좌절을 뛰어 너머
작곡한 자전적인 음악
"나의 생애에서(From My Life) 로 그는 많은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러 일으켜
주었습니다
그는 말년에는
우울증과 불면, 환각, 실어증과 함께 고통을 받으며
때로는 폭력적이 되기도 하여
더 이상 집에 있을 수가 없어서 결국에는
1884년 4월 23일에 정신병원에 감금되었다가
다음 달 5월 12일에 사망하였습니다.
병원의 기록에는 사망 원인이 노인성 치매
(senile dementia)라고 되어 있지만
그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은 원인은
매독(spyhills)이었다고 합니다.
프라하에서는 매년 그의 서거일인 5월 12일에
봄 음악축제가 시작됩니다.
(Web)
프라하의 스메타나 박물관 입구에 있는 기념품 가게
현관인가? 어느 바닥에 새겨진 스메타나의 사인
박물관 안 벽에 걸려있는
아버지 Frantisek Smetana와
어머니 Barbora Lynkova의 초상화
스메타나와 첫번째 부인 카트리나의 초상화
Bedrich Smetana & Katerina Smetanova, Johan
Per Soedermark, 1858
비가 내리고 흐린 날씨에 박물관 안에서 바라 본
카를교와 체코의 젖줄 블타바강
비세흐라트 고성에 있는 스메타나의 묘지
H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