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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ado 및 Fado의 女神 Amalia Rodrigues ] Amalia Rodrigues(포루투칼 Fado의 女神) Maldicao / Amalia Rodrigues (어두운 숙명) [ Fado의 개요 ]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서정적인 분위기의 민속음악. Fado... 우수와 향수가 깊이 서려있는 오늘날의 포르투갈 파두는 프랑스의 샹송이나 이탈리아의 칸쏘네 와 비교 될만한 월드 뮤직의 한 장르다. Fado는 원래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 항구에 있던 선술집에서 뱃사람들에 의해 등장했다. 초기의 Fado는 뱃사람들의 외로움과 향수를 절절이 담고 있는 노래말이 주종이었는데 지금은 포르투갈 민중의 한과 설움을 대변하는 민족적 대중음악으로 정착하였다. Fado는 운명, 혹은 숙명을 뜻하는 라틴어 'Fatum'에서 유래한 말이다. 파두의 주요 테마는 인생, 추억, 향수, 슬픔, 동경, 외로움, 애수,회상, 범신론적 경향등과 같은 포루투칼민족 특유의 정서가 담겨 있다 포르투갈에서는 그런 정서를 Saudade(사우다데: (향수鄕愁)라고 한다. 한국인의 '恨'과 닮아있는 정서이며 사우다드는 과거 5백50여년간 포루투칼을 지배했던 무어인들의 아랍적인 숙명관의 영향으로 본다. [ 파두의 기원 ] 음악학적·역사적으로 보아 거의 유력한 것은 1800년을 전후하여 포르투갈과 브라질에서 크게 유행했던 도시풍이면서도 감상적인 노래 (모디냐 modinha)와 춤곡인 (룬두 lundu)가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시대를 거쳐 파두가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다듬어진 것은 19세기 전반으로 추정된다. 아무튼 파두(Fado)를 세가지 문화권의 음악적 산물이 뒤섞인 예술양식으로 보면 적당할 것 같다. 우선 리듬은 아프리카로부터, 감수성과 시적 노랫말은 포르투갈 전통 시인들로부터, 그리고 악곡형식은 브라질 음악으로 부터비롯된 형태라고 보는 게 오늘날의 일반적 이해다. 파두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지는데 첫째는 포루투갈의 수도이자 그리스 신화의 영웅 오디세이가 세웠다는 유서깊은 항구도시 리스본 뒷골목을 중심으로 한 슬픈곡조의 리스본 파두, 둘째는 포르투갈 북부의 교육도시 코임브라에서 주로 남성보컬들이 부르는 밝고달콤한 사랑의 세레나데 '코임브라 파두(파두 다 코임브라)'의 두갈래이다. 파두는 역시 슬픔과 향수가 주된 기조인 리스본 파두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익숙하다. 파두를 세계적인 음악으로 끌어올린 포르투갈 출신의 여가수 "아말리아 로드리게스"가 리스본 파두의 대표적인 가수이다. [ 파두를 부르는 가수 : 파디스따 ] 파두(Fado)를 부르는 가수를 파디스따(Fadista)라고 한다. 대표적인 파디스따(Fadista)로는 Amalia Rodrigues(아말리아 로드리게스), Jose Afonso(주제 아퐁수) 등이 있다. 파디스따는 대부분 여성이며 보통 '파두의 집(Casa do Fado)'으로 불리는 레스토랑을 무대로 노래부른다. 파두는 가수의 노래와 하트 모양을 한 포르투갈 기타, 스페인 기타, 이렇게 셋의 단촐한 형태로 연주된다. 파디스따(Fadista)들은 남녀를 불문하고모두 검은가운을 입고 눈을 감은채 파두를 부른다 그 이유는 전설적인 파디스따 '마리아 세베라'의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Casa do Fado(파두의 집) 에서 노래하는 요즈음의 "Fadista(파디스따)들은 다른 칼라의 옷위에 검은색의 숄 또는 조끼를 걸치기도 한다. [ 전설적인 파디스따 : 마리아 세베라 ] Severa 1820~1846 포루투갈 파두의 초기 역사를 장식한 유명한 파디스따로 "마리아 세베라(Severa)"라는 집시族여인이 있었다. 천부적인 음악성으로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던 그녀에게 매료된 "비미오주(Vimioso)"라는 백작은 세인들의 손가락질을 마다하고 그녀를 따라다니며 그녀의 공연에서 기타 반주자를 자청했다. 당시의 보수적 귀족사회는 이방인 집단인 집시와의 접촉 자체가 흉이었고 파두는 비주류의 문화였을뿐 귀족문화의 보편적 코드가 아니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세베라가 26세의 어린 나이에 요절하자 "비미오주"백작은 귀족들의 무도회장에서 그녀 대신 파두를 불렀다. 마리아 세베라가 세상을 떠난 후 집시 파디스따들은 파두의 천재였던 "마리아 세베라"의 명복을 비는 뜻에서 검은 가운을 입고 노래했다. 이것이 전통이 되어 오늘날에도 파디스따들은 검은 가운을 입고 파두를 부르는것이다. 불행히도 우리는 전설적인 파디스따 마리아 세베라의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없다. 그녀의 1820~1846년 시대는 녹음기술이 없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다. 세베라 이후, 100년만에 같은 땅 리스본의 비천한 슬럼가 거리에서 " Fado의 女神 -;Amalia Rodrigues " 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 아말리아 로드리게스 ] 예명 : Amalia Rodrigues(포르투갈 리스본) 본명 : Amalia da Piedade Rebordo Rodrigues 연대 : 1920.7.23 ~ 1999.10.6 포루투갈 민속음악인 파두를 세계적인 음악으로 끌어올린 "아말리아 로드리게스"는 살아있을때 이미 포루투갈인들에게 파두의 여신, 파두의 여왕, 포루투갈 대사, 포르투갈 최고의 문화유산, 20세기가 낳은 포르투칼 최고의 영웅 등으로 불려졌다 아말리아 로드리게스는 리스본 파두의 대표적인 "파디스따"로 파두의 주된 주제인 사랑이야기뿐 아니라 조국에 대한 사랑과 민중의 애환을 노래했다. "아말리아 로드리게스"는 1920년 7월 23일 리스본의 알파마라는 슬럼가의 극빈 가정에서 열명의 형제 중 하나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한살때 가출해 버리고,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던 그녀는 열두살 때부터 공장 여공, 양장점 점원, 오렌지 노점상등을 했다. 꿈을 빼앗겨버린 어린 소녀가 가진 유일한 위안은 노래를 부르는 일이었다. 탱고댄서로 일하기도 하던 아말리아는 산안토니오 음악제에서 대상을 받은 뒤 어린나이 열 아홉살에 전설적인 파디스따 "마리아 세베라"의 이름을 딴 극장에서 정식 데뷔 공연을 가졌다.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으로 파두의 새로운 세계를 연 "아말리아 로드리게스"는 곧 파두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녀는 조국 포루투갈뿐 아니라 유럽· 남아메리카등 각지에서 연주여행을 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1954년 프랑스 영화 [과거를 가진 애정]에 출연하여 [어두운 숙명 Malbicao]이라는 곡을 불렀다. 이 곡은 흑인계의 리듬을 사용한 파두로서는 오히려 이색적인 곡이었지만, 그녀의 명창(名唱)에 의해 대히트했고, 파두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에 공헌했다. 이밖에도 [코임브라 Coimbra] [그리운 리스본 Lisbon Antiga] [난파선 Naufragio][갈매기 Gaivota] 등을 불러 세계인을 감동시켰다. 아말리아는 포루투갈의 파두를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음악으로 이끌어 올리는데 결정적이고도 독보적인 역활을 한 공로로 포루투갈 최고의 훈장인 "산티아고 대십자훈장"을 받았다. 1999년 10월 6일 아말리아 로드리게스가 79살의 나이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을 때 포르투갈의 수상 안또니우 구떼레스 (Antonio Guterres)는 3일간의 국장(國葬)을 선포했다. 한 나라의 통치자가 한 민속음악가수에 대해 공식적으로 국장을 선포한 사례도 없거니와 "조국의 목소리"라고 칭하는 예우를 한 경우는 일찌기 없었다 때마침 포르투갈은 총선기간 이었음에도 선거운동이 3일간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다. 포루투갈의 국민들은 그런 예우가 아말리아에게 결코 넘치지 않음을 알았으므로 그녀의 예술에 경의를 표했던 것처럼 그녀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다. 그렇게 아말리아 로드리게스는 "포루투갈의 목소리"가 되었다. 그녀는 국가적 위인들의 무덤인 판테온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Amalia Rodrigu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