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성씨 및 족보 탄생의 비밀 (2)
.[중국,한국,일본국민들의 성씨에 대한 역사나 인식]
중국의 성씨관...
중국은 예로부터 성(姓)과 씨(氏)는 엄격히 구분되어 있었다.
원래 성(姓)이라 함은 모계제 사회의 흔적으로 “어머니의 출신지”를 가리키는 말이었고,
씨(氏)는 “출생한 뒤에 아버지와 함께 살던 곳”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중국인들이 모두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믿고 있는 “황제(黃帝)”의 경우
성(姓)은 “희(姬)”이고 씨(氏)는 “헌원(軒轅)”이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성격이 조금 바뀌어 황제(皇帝),
즉 천자(天子)가 내려 주는 것은 성(姓)이라 했고,
제후(諸侯) 또는 국왕(國王) 정도가 내려 주는 것은 씨(氏)라 했다.
언제나 성(姓)이 한 단계 위의 개념이었는데,
보통 성(姓)은 한 글자였고 씨(氏)는 두 글자가 많았다.
그리고 한(漢) 나라 때에 족보라는 것이 만들어졌는데,
이는 천자가 각 제후나 공신들의 자제들에 대한 특별 관리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때부터 천자가 만든 족보에 이름이 있는지 없는지가
권력의 유무를 판별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성씨는 남자들만의 혈통을 표시하는 것이 되어 버렸고
생물학적으로 특정한 Y염색체의 유전 상황을 표시하는 도구가 되어 버렸다.
어쨌든 중국의 성씨는 역사가 5000년이 되었고, 성씨는 문화의 전승과
남성 혈통의 흐름을 연구하는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같은 성씨이면 무조건적으로 친근감을 느끼는” 관습이
자연스러이 형성되었고, 이러한 혈연 관계는 인간생활에 활력을 넣어 주기도 하고,
또 때로는 해악을 끼치기도 한다.
우리 한국의 성씨관...
원래 우리 나라의 토착민들은 성씨가 없었다고 한다.
계속적인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서 일부 고위 관리들에게서
성씨를 가진 자들이 간간이 나타났고,
삼국시대 말기 신라에서는 국력의 세계화를 기치로 내걸고 왕족을 중심으로
성씨를 스스로 만들어서 가졌다. 그래서 왕족들은 이미 수백 년 전에 죽고 없는
먼 조상님들(혁거세, 알지 등등)에게도 소급해서 성씨를 만들어 붙이고 했다.
조선시대 말까지도 우리나라는 양반보다 쌍놈들이 더 많았고,
성씨를 갖고 있는 사람들 숫자도 그리 많지는 않았다. 대한제국 시절
일본의 압력 덕분에 호적에 성씨란 것을 처음으로 만들어 올린 사람들도 많았지만, “
만들어 올렸다”는 그 사실은 언제까지나 “가문의 비밀”로 숨겨 두어야 했다.
성씨의 유무와 관련한 성씨의 위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우리 백성들은
양반제도가 비록 법적으로 폐지되었다고는 하지만
이 어렵게 얻은 “양반의 성씨”만큼은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
1940년대에 일본이 “이제 조선과 일본은 명실상부한 한 나라”임을 강조하면서
일본식으로 창씨하는 것을 허용한다고 발표하고, 앞으로 성씨로 인한 조선인,
일본인 간의 차별대우는 영원히 없어질 것이라 하였다.
성씨 자체를 “가문의 역사”로 생각하는 많은 우리 백성들은 당연히 반대하였고,
성씨의 역사가 불과 50년밖에 안 되어 성씨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것도 없었던
일본 정부에서는 조선인들의 반대를 보고 “거참, 이상하다.
그깟 성씨 가지고 왜들 저러지?”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성씨에 별 의미를 두지 않는 일본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성씨를 만들어 신고한 사람도 있었다.
소설가 춘원 이광수는 신청 첫날 아침에 맨 먼저 신고하였는데,
이광수가 만든 성씨는 “일본 천황 고향의 뒷산인
향구산(香久山)의 이름에서 따 왔다는” 향산(香山)이었다.
이광수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은 “성씨란 건 별 것 아니야”라는
자기네들의 전통적 인식을 한국식으로 바꾸지는 않았다.
어쨌든, 지금의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자가 결혼 후에도 자신의 성씨를 그대로 유지하는” 나라가 되어 있다.
전 세계의 남자들이 한국인들에게 깜짝 놀라는 것이 두 가지라 하는데,
한 가지는 부인의 성씨 문제이고 또 한 가지는
“부인이 남편 통장을 관리”하는 것이라 한다.
“자다가 벌떡 깨어 다시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그들이 보는 한국은 거의 구제불능성 선천적 여성천국이라 한다.
일본의 성씨관...
일본은 우리 한반도의 영향을 받아 백제와 교류할 때부터
성씨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고, 오랜 기간 동안 그럭저럭 잘 살아왔다.
가물에 콩 나듯 하는 중국과의 교류도 크게 활발한 적이 없기 때문에
성씨의 위력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19세기말 미국이 군함을 밀고 들어오고, 일본 청년들이 세계일주도 하는 과정에서
외국인들이 “패밀리 네임”이란 것을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을 많이 보게 되었다.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을 보니 자기네들의 직업을 가지고 만든 성씨도 있고,
자기네 마을의 특징을 살려서 만든 성씨도 있었다.
그래서 일본도 성씨란 걸 만들어서 쓰기로 하였다. 그런데,
일본의 학자들에게 물어 보니 동양 문화권에서는 성(姓)이라는 것도 있고
(氏)라는 것도 있는데..
성(姓)이란 것은 황제가 직접 만들어서 나누어 주어야 하는 것이라 하였다.
백성이 한두 명도 아닌데 어느 세월에 만들어서 준단 말인가...
그냥 일본은 씨(氏)를 만들어서 쓰기로 하고 창씨(創氏)하는 업무는
각 사무라이들에게 그냥 맡기기로 하였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순식간에 수만 개의 씨(氏)가 만들어졌는데...
지금도 일본은 어떤 장부이든지 “성명(姓名)”이란 칸은 없고
어디든지 모두 “씨명(氏名)”이란 칸만 있다.
19세기 말 갑자기 시행된 창씨(創氏)였기 때문에
각자의 씨(氏)에 대한 커다란 자부심 같은 것은 당연히 없다.
청일 전쟁 승리 이후 조선에게도 성씨 없는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고자
호적법을 만들어 창씨(創氏)의 기회를 주었으나,
조선인들은 이상하게도 창씨(創氏)는 않고 기존 양반들의 성(姓)을 빌려 와서
관청에 신고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한 글자 짜리인 성(姓)을 사용하는 사람은 중국 또는 조선인이고
두 글자 짜리 씨(氏)를 쓰는 사람은 일본인....
어찌 되었든 간에 국적 구별이 쉬워서 좋기는 했다.
조선을 삼키고 난 뒤에 조선인들로부터 “같은 나라가 되었다고 해 놓고는
차별대우가 너무 심하다”는 등 불만사항이 많이 접수가 되었지만,
우선 이름에서 부터 출신이 확연하게 표시가 나니
일본 정부로서도 별로 뾰족한 대책이 없어서 그냥 대충 세월만 보냈다.
그러다가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고, 일본군들이 매일매일 죽어 나가고...
조선인들이라도 군인으로 뽑아서 내보내야겠는데...
차별대우 해소를 위한 근본대책을 세우라고 매일 투덜대는 저 조선인들을
그냥 일본군으로 들여 보냈다가는 전투도 제대로 못해 보고 질 것 같고...
일본정부는 착잡해졌다.
누군가 묘안을 냈다. 일본식으로 창씨(創氏)할 기회를 한 번 더 줄 터이니
이 참에 일본식으로 제대로 창씨를 해라... 어차피 얼굴 생긴 것도 똑같고..
조선 출신을 차별대우하고 싶어도 조선 출신이란 표시가 없으니 못할 것 아니냐...
그러나 그대신 조선 청년들 군대에 좀 가 줘야 되겠다....
이렇게 하여 1940년대에 창씨(創氏)할 기회를 주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곳에서 문제가 터졌다.
“어떻게 그 동안 써 오던 성(姓)을 버리고 그보다 격이 낮은 씨(氏)를 쓸 수 있느냐”라는
것이었다. 일본인들로서는 얼른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었다. 이미 오래 전에
법적으로 양반이란 것도 없어졌고 문벌이란 것도 이제 큰 의미가 없어졌는데
남은 성(姓)을 가지고 왜 그리 집착을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그래도 차별대우 철폐란 것이 어차피 민간 차원에서는 불가능한 문제이고
정책 차원에서 조선출신이라는 표시가 안 나게 해 주겠다는 것인데...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의 불만에 대해 잘 이해가 안 갔지만
그래도 강제 창씨를 계속 밀고 나갔다.
(이 때 林, 柳, 南씨 일부는 일본에도 있는 성씨라 하여 새로 창씨를 하지 않았다고 함)...
그리고 조선인들을 일본군으로 받아 들여 전쟁을 계속 수행하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조선사람들만 일본군복을 입은 채로 애매하게 죽은 셈이 되어 버렸고
몇 년 후 일본은 전쟁에서 졌다.
1945년에 전쟁도 끝이 나고 살림살이도 일본 내부로 축소되었으니 일거리도 줄어들고
오히려 편해졌다. 일본인들도 이제 성씨를 사용한 지 거의 100년이 다 되어 간다.
100년 동안 의 짧은 역사가 일본인들에게 성씨에 대한 관념을 얼마나 변화시켰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아직까지는 성씨에 대한 뚜렷한 자부심 같은 것은 없는 것 같다.
어쨌든 일본인은 성씨의 종류는 8만여 가지로 무지하게 많지만
성씨별 인구 수에 대해서는 아직은 신경을 쓰는 사람이 없는 모양이다.
우리나라 양반의 자손들이 볼 때에는 분명히 일본인은
"근본도 모르는 쌍놈들"일 뿐이다.
^^*
○ 글쓴이 : 문학박사 황재순(제물포고 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