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파가니니 /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 D장조 Op. 6)

담하(淡霞) 2021. 5. 5. 10:38
Paganini Nicolo Concerto No.1 In D Major For Violin And Orchestra, Op.6 (파가니니 /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 D장조 Op. 6) Nicolò Paganini / Concerto No. 1 in D Major (파가니니 / 바이올린 협주곡 1번 D장조, Op.6) 제 1악장. Allegro Maestoso 처음에 관현악이 경가극의 서곡과 같은 가락으로 군대풍의 화려한 서주가 있다. 이윽고 바이올린이 연주하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모든 연주 기교를 보인 현란한 것이다. 주제는 아름답고 이탈리아 가극의 주연 여배우처럼 우아하다. 제 2악장. Adagdio Espressivo 극적인 연주로 시작되고, 정열을 숨긴 서정적인 멜로디가 감동적으로 계속된다. 제 3악장. Rondo - Allegro Spiritoso 생생하고 빠른, 마치 작은 도깨비가 놀란 듯이 춤추는 곡조가 나타난다. 현의 복잡한 기교를 사용하여 다채로운 음색을 나타내며, 몽환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 Paganini Nicolo ] Concerto No.1 In D Major For Violin And Orchestra, Op.6 (파가니니 /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 D장조 Op. 6) 파가니니가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은 6곡 정도 되었으나, 그 중에 인쇄된 곡은 그 중 2곡 뿐이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가장 자주 연주되는 곡이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이다. 그가 1811년에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그야말로 테크닉의 불꽃 튀는 향연이며 이탈리아의 벨칸토 오페라 스타일의 서정적이고 달콤한 선율이 풍부하게 흐르고 있다. 제 1악장은 D장조 4분의 4박자로 소나타 형식이며, 장대하지만 화려하고 변화가 가득해 듣는 사람에게 흥미로움을 전해주는 악장이다. 리드미컬하고 상쾌한 주제에 이은 행진곡풍의 전개부, 독주 바이올린의 카덴차풍 활약 그리고 이어지는 부드러운 노래와 연결되는 재현부는 화사한 바이올린의 기교를 충분히 구사할 수 있는 웅대하고 극적인 곡이며, 단독으로 연주하는 경우도 적지 않을 정도로 잘 짜여져 있다. 베이스 드럼, 심벌즈가 포함된 오케스트라의 서주가 시작되고 기교적인 카덴차가 시작된다. 행진곡 스타일의 리듬은 장대하게 울려 펴진다. 아르페지오, 3중 4중 스톱 등이 난무하고 스타카토로 된 중복3도가 등장한다. 병행8도나 병행10도의 악구는 파가니니가 즐겨 사용한 것들이며, 비정상적인 스코르다투라(조율 방법)를 통해서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했다. 제 2악장은 서정적이며 오페라의 벨칸토 스타일의 선율이 흐른다. 대단히 풍부하고 다채로운 감정이 흘러넘치고 부드러운 선율 속에서 서정적인 감정을 고양시킨다. 제 3악장의 론도는 스타카토 주법이 강한 인상을 남기며, 리코세처럼 지극히 화려한 주법을 통해 비등점을 향해 끓어오르는 뜨거움을 표현한다. (Web) [ Paganini Nicolo ] (1782.10.27 ~ 1840.5.27. 伊) 바이올린에 관한한 파가니니의 파격성은 피아노에 있어서의 쇼팽의 그것과 비슷한 독특한 그만의 특성을 여지없이 발휘하고 있다. 악마에게 혼을 팔았다는 Paganini. 1초에 12번의 음을 낼수 있는 바이올린 연주자로서 파가니니는 당시 현존하는 음악들이 자신의 작품에 기량을 제대로 발휘할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직접 테크닉 위주의 곡을 작곡했다. 어렸을 때부터 강도 높은 훈련의 결과로 얻은 유연한 긴 손가락 덕분에 파가니니는 감히 그 누구도 흉내내지 못하는 엄청난 기교로 무장한 작품을 쓸 수 있었다. 그가 구사한 기교의 총체는 그의 여섯 곡의 바이올린 협주곡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1번에서 잘 드러난다. 이 곡은 파가니니 특유의 현란한 테크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3악장에서는 이것이 절정을 이룬다. 1840년 5월 27일 오후 5시 20분, 파가니니가 니스에서 사망했다. 쉰 여덟 살의 나이였는데, 죽기 몇 년 전에도 이미 많은 조짐들이 보였었다. 아무튼 그의 때이른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가니니의 유산은 남아 있었다. 그것은 바로 테크닉 그 자체에 대한 몰입이었다. 만약 그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클래식 음악의 역사는 다르게 흘러갔을 것이다. 리스트가 그의 연주를 듣고서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바를 비로소 이해한 것처럼 수많은 음악가들에게 파가니니는 영감을 던져주었다. 심지어 슈베르트처럼 파가니니와 멀어 보이는 작곡가까지 파가니니의 연주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파가니니는 바이올린이 도달할 수 있는 테크닉의 극한을 보여줬다. 그때까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효과들을 바이올린을 통해서 보여줬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대중의 호기심은 매우 강력했고, 어떤 관객은 파가니니에게 직접 그의 바이올린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물어볼 정도였다. 파가니니가 파우스트처럼 악마에게 자신의 영혼을 팔아 넘겼고 그 대가로 마술 같은 바이올린 솜씨를 갖추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등장했으며, 지극히 매혹적인 음색의 네 번째 현(G선)의 비밀은 파가니니가 목을 졸라 살해한 애인의 창자였다는 소문도 돌았다. 감옥에 갇혀 있던 파가니니가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이에 감동한 간수가 자신도 모르게 감옥문을 열어줘서 파가니니의 탈옥을 도와줬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도 많은 사람이 믿을 정도였다. 1820년의 베를린 콘서트에서 파가니니의 연주를 들었던 "아돌프 막스"는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바이올린이 홀로 울려 퍼지며 마치 달콤한 사랑의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듯 절망에 휩싸여 탄식했다. 마치 웃음과 눈물, 호통과 위로, 사랑의 맹세와 배반의 모욕이 뒤죽박죽 뒤섞인 황망한 노파를 눈 앞에서 보는 듯하다. 이건 바이올린 연주가 아니었다. 음악이 아니라 마술이었다. 카를 폰 홀타이는 "파가니니"는 사람들의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 대고 흐느꼈다. 듣는 이의 가슴과 영혼을 자신의 고통으로 휘감았다. 하나의 현으로만으로도 모든 이들을 함께 울게 만들었다.고 묘사했다. 파가니니는 연주회 개런티를 다른 사람들의 곱절 이상으로 받았고, 티켓은 순식간에 매진되었다. 사람들은 파가니니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과 미치게 증오하는 사람들로 양분되었고, 그들 모두가 파가니니의 자장 안에 있었다. 그로 인해 파가니니가 연주한 악기인 "과르네리"도 새롭게 주목받을 수 있었다. 요컨대 파가니니의 등장으로 음악계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뀐 것이다. 파가니니 전설의 시작은 제노바였지만 그 완성은 파리였다. 19세기 예술의 수도는 파리였고, 만약 파리에서 성공하지 못한다면 부와 명성을 모두 거머쥘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1831년 3월 9일에 열렸던 파리 데뷔 연주회는 파가니니에게 운명을 건 콘서트였다. 이미 빈, 프라하, 바르샤바, 베를린 등의 도시를 몇 년 동안 거치면서 파가니니에 대한 소문은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파가니니의 파리 연주회는 즉각 엄청난 반응을 몰고왔다. 테오필 고티에, 조르주 상드, 알프레드 드 뮈세, 프란츠 리스트, 생트-뵈브, 루이지 케루비니, 자코모 마이어베어 등 동시대의 주요한 문화계 인사들이 파가니니의 파리 데뷔를 충격과 경악 속에서 지켜보았다. 그 다음날 신문에는 "우리 모두는 숨을 죽인 채 귀를 기울였으며, 두근두근 심장이 뛰는 소리조차 귀에 거슬렸다. 그것은 신성하고도 악마적인 열기였다."는 문구가 쓰일 정도였다. 파가니니는 파리의 대성공 이후, 런던으로 진출했다. 1831년 6월 3일, 런던 오페라 극장에서 열린 독주회는 두 배 이상 오른 표값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고 그로인해 원래 예정되어 있던 5월 21일에서 10일 이상 미뤄져서 개최되었다. 파가니니의 열렬한 추종자가 된 벨기에의 바이올리니스트 앙리 비외탕은 파가니니의 연주는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온몸이 얼어붙은 듯 움직일 수 없었고, 나는 숨을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는 말로 그날의 연주회를 증언했다. 또다른 이는 “이 놀라운 음악가의 출현으로 얼마나 많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자살하고픈 유혹에 시달렸을지 상상하기 두렵다”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런던에서 석 달 동안 서른 번 정도 연주회가 연속으로 있었고 파가니니는 자신이 세상의 중심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자신의 말대로 파가니니는 바이올린 한 대로 세상을 정복한 것이다 (We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