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앙 조르주 비베르 - 놀라운 소스
(1890년경)
이은화의 미술시간 : 위트의 힘
호화로운 주방에서 두 남자가 요리를 하고 있다.
왼쪽의 마른 남자는 요리사고,
오른쪽의 배 나온 남자는 추기경이다.
나이 든 추기경은 자신이 만든 소스로 젊은 요리사를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소스를 맛본 요리사는 “어떻게 이런 맛을!” 하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고, 냄비를 손에 든 추기경은
먼 데를 응시하며 뿌듯한 미소를 짓고 있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제앙 조르주 비베르가 그린 이 그림은
21세기 ‘쿡방’의 한 장면처럼 재미를 주지만
한 가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교황을 모시는 최고위 성직자가
왜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걸까?
지금이야 요리하는 남자가 흔한 시대지만
19세기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특히 상류층 남성이나 고위 성직자가
주방에 들어간다는 건 상상할 수 없던 때였다.
그런데 이 추기경은 선홍색 예복 위에 앞치마를 두르고
능수능란하게 요리 실력을 뽐내고 있다.
사실 비베르가 이 그림을 그린 목적은
성직자의 위선적인 생활과 부패한 상류사회를
고발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활동하던 시대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과
파리 코뮌, 나폴레옹 3세의 폐위와 제3공화정 수립 등
군주제에서 공화제로 옮겨가는 프랑스 사회의
정치적 격변기였다.
당시 고위 성직자들은 대부분 왕족이나
귀족 가문 출신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했기 때문에
공화주의자들에겐 비판의 대상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비베르는 성직자 풍자화로
큰 명성을 얻었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추기경이나 주교는
요리를 하거나 카드놀이를 하고, 점쟁이를 불러 점을 보거나
불어난 체중 때문에 다이어트를 하는 등
종교생활과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묘사돼 있다.
감옥에 갈 수도 있는 불경한 내용이었지만,
위트와 유머가 서린 그의 그림은 미국에까지 알려져
큰 인기를 끌었고, 심지어 성직자들도 좋아했다.
이렇게 비판의 당사자까지 매료시킨 비베르의 풍자화는
날 세운 비판보다 더 강력한 위트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의 시사만평처럼 말이다.
- 이은화 마술 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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