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fingerBadfinger
영국 출신의 4인조 남성 그룹 Badfinger의 명곡
Without You' 입니다.
"Without You" 는 1970년 말 두번째 음반 [No Dice]에
수록된 곡으로 싱어송 라이터인 Harry Nilsson이
1971년에 리메이크 해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하면서
팝의 고전으로 자리한 곡이다
Harry Nilsson을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어준 이 곡은,
Badfinger의 피터 햄과 톰 에반스가 만든 곡으로
해리 닐슨 뿐만 아니라 머라이어 캐리, 에어 서플라이 등
지금까지 약 180여명의 가수가 리메인크 한 유명한 곡이다
이 곡이 처음 작곡되고나서 그다지 알려지지를 못했는데
해리 닐슨이 1972년 이 노래의 판권을 구입해 발표함으로 해서
크게 히트시켰고
원작자인 피터 햄과 톰 에반스는 이후 상실감과
여러가지 경제적 문제들로 인하여 모두 자살하게 되었고
해리 닐슨도 1994년 심장마비로 돌연사하고 말았습니다.
이 노래를 리메이크 한 Mariah Carey도
한 때 자살소동을 벌였다고 하며, Air Supply 역시
이 노래를 리메이크 한 후 인기가 없어졌다고 하여
혹자는 이 곡을 '배드핑거의 저주' 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이들은 Beatles의 후원으로 출발했다는 이유로
한동안 비틀즈의 사운드와 흡사하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였으나, 'Day After Day',
'Without You'와 같은 곡들이 인정을 받게 되면서 부터
독자적인 음악성을 인정 받았습니다.
Without You / Badfinger
Without You / Badfinger
Well I can't forget this evening
And your face when you were leaving
But I guess that's justthe way the story goes
You always smile but in your eyes
your sorrow shows, yes it shows
떠나가는 당신의 얼굴과
이 밤을 난 잊을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될 수밖에 없나 봅니다
당신은 언제나 미소짓지만
두 눈에는 슬픔이 서려 있습니다
Well I can't forget tomorrow
When I think of all my sorrow
I had you there then I let you go
And now it's only fair that I should
let you know what you should know
비탄에 빠질 내 모습을 생각하니
앞날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내 사랑이었던 당신을 보내야 했죠
그리고 지금 당신이 알고 있어야 할 것을
말하는 게 순리일 것 같습니다
I can't live if living is without you
I can't give I can't give any more
난 당신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난 더 이상 드릴 것도 없습니다
I can't live if living is without you
I can't give I can't give any more
난 당신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난 더 이상 드릴 것도 없습니다
Well I can't forget this evening
And your face when you were leaving
But I guess that's just the way the story goes
You always smile but in your eyes
your sorrow shows, yes it shows
떠나가는 당신의 얼굴과
이 밤을 난 잊을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될 수밖에 없나 봅니다
당신은 언제나 미소짓지만
두 눈에는 슬픔이 깃들어 있습니다
I can't live if living is without you
I can't give I can't give any more
난 당신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난 더 이상 드릴 것도 없습니다
I can't live if living is without you
I can't give I can't give any more
난 당신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난 더 이상 드릴 것도 없습니다.
Badfinger
비틀즈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1960년대 후반
그룹 구성이나 음악 스타일이 비슷한
아이비스(The Iveys)라는 밴드가
비틀즈가 설립한 Apple 레코드를 통하여 데뷔하게 된다
[ The Iveys ]는
피트 햄(Pete Ham, 보컬, 피아노),
마이크 기빈스(Mike Gibbons, 드럼),
톰 에반스(Tom Evans, 베이스, 기타),
론 그리피스(Ron Griffiths, 베이스)로
구성되어 1964년 결성 된 그룹이다
이들은 애플 레코드와 계약하며 그룹 이름을
Badfinger 로 바꾸고 1969년말 폴 맥카트니와
데뷔 음반이자 링고 스타가 출연한 영화의
사운드 트랙 음반인 Magic Christian Music을
제작하여 1970년에 발표하였다.
이 앨범에는 폴 매카트니가 작곡하여
비틀스의 체취가 짙게 묻어나는Come and Get It과
한국에서 배드핑거를 대표하는 곡으로 자리잡은
Carry on Till Tomorrow 같은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데뷔 음반 발표후 론 그리피스가 그룹을 탈퇴하게 되고
리버풀 출신의 기타리스트 Joey Malland가
가입하여 빈자리 를 채우게 된다1970년 말
배드핑거의 두번째 음반 No Dice 가 발표되었는데,
이 음반에는 Harry Nilsson 과 Air Supply,
Mariah Carey가 리메이크 했던 명곡
"Without You" 가 수록 되어 있다.
이들은 비틀즈와 비슷하단 이유로 한 공연에서
비틀즈 대타로 연주를 하게 되었는데
이때 관중의 반응은 싸늘했고
"우리들이 원하는것은 비틀즈다~!"라며
이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입혔고
비틀즈의 해체와 함께 애플레코드에서도 나오게 된다
그 후 피터 햄이 1975년 4월 23일 자살로
이 그룹은 비운의 그룹으로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영국 출신의 4인조 팝 록 밴드 Badfinger의 역사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박복하다.비틀즈의 지원사격 덕분에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시작된 그들의 성공은
불행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들은 비틀스 때문에 성공했고 비틀스 때문에 좌절했다.
활동 후반부 그들은 비틀스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지만
창작력의 부재와 금전적인 문제가 끼어 들면서
주축 멤버 두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영욕(榮辱)으로
점철된 밴드의 역사를 마감했다
때문에 ’Carry on till tomorrow’, ’No matter what’,
’ Maybe tomorrow’, ’Day after day’,
그리고 Harry Nilsson과 Air Supply,
Mariah Carey가 커버한 ’Without you’ 같은 명곡들을
배출 했음에도 불구하고 Badfinger 는
가장 불행한 팝 그룹 중 하나로 기억된다.
’No matter what(8위)’와 그 유명한 ’Without you’가
수록된 2집 <No Dice>는 처녀작이 공개된
1970년 연말에 발표되어 음악언론의 호평과 더불어
이미 공고화된 대중적 인기에 박차를 가했다.
’No matter what’은 나중 197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Now and Then>의 사운드트랙에 삽입되어
당시 분위기를 훌륭하게 살려내는데 일조했다.
특히 ’Without you’는 ’Everybody’s talking’이나
’Jump into the fire’로 유명한 싱어 송라이터
Harry Nilsson이 커버해 팝의 클래식임을 증명했다.
배드핑거에게는 억울한 일이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그 스스로가 싱어송라이터인 관계로
해리 닐슨이 ’Without you’을 작곡한 것으로 알고 있다.
1971년의 <Straight Up >은
로커 Tood Rundgren과
George Harrison이 앨범 제작을 맡아 주었다.
1982년에 발표된 영국 출신 뉴 웨이브 싱어 송라이터
Joe Jackson의
’Breaking us in two (18위)’와 유사한 멜로디를 뽑아 낸
’Day after day(4위)’와 1980년대 초반의 팝록 사운드를
이미 10여년 전에 구현한 ’Baby blue(14위)’가
이 음반의 가치를 높여 주었다.
영국에서 출발한 이 4인조 밴드의 네 번째 앨범 <Ass>는
애플 레코드에서 발표하는 마지막 열매였다.
대형 히트 싱글은 없었지만 밴드가 직접 음반 제작에 참여하면서
커다란 발자국을 남겼다.
그러나 이 LP부터 배드핑거에게 어두운 그림자가 번져갔다.
이때를 기점으로 그들의 음반들은 레코드 매장에서
재고의 양이 점차 증가했고 그에 따라
이들에겐 재정적인 문제와 멤버간에 불협화음이 잇따랐다.
음반사를 워너로 바꾸고 1974년 말에
<Wish You Were Here>를 공개했지만 초기 디스코의
자극적인 리듬과 하드록과 헤비메탈의 후련하고 화려한 음악에
매력을 느낀 대중들은 더 이상 이
영국 밴드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신보의 판매력이 급격히 힘을 잃기 시작하자
적자에 빠진 리더 "피트 햄"은
1975년 4월 23일 차고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나머지 멤버들도 충격에서 벗어나
새 열매를 맺기까지는 4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1979년에 공개된 음반 <Airwaves>마저
그리던 성공은 재현되지 못했다.
디스코나 부드러운 발라드 아니면 성인 취향의 록음악이
당시를 호령하던 1970년대 말에
이들의 음악은 더 이상 먹혀들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1981년에 발표된
<Say No More>까지 계속되었고
그 참패의 결과 또한 마찬가지였다.
계속된 실패와 재정 문제는 음악방향을 잠식해
톰 에반스와 조이 몰랜드는 전화로 심하게 다툰 후
에반스도 피트 햄처럼 목을 매 자살했다.
1983년 11월 19일에 일어난 비극이었다.
이 사건으로 밴드는 공식적인 해산을 발표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