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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덕진진.남장포대.덕진돈대

담하(淡霞) 2019. 6. 13. 17:21
강화도 덕진진.남장포대.덕진돈대 강화도 덕진진의 공조루(控朝樓) 강화도 덕진진의 공조루(控朝樓). 홍예문(虹霓門: 무지개모양 문) 덕진진(德津鎭) 덕진진에는 조선 숙종 5년(1679)에 축조된 용두돈대, 덕진돈대와 남장포대, 덕진포대가 소속되어 있었으며, 숙종 3년(1677)에는 만호를 두고 군관 26명, 병 100명, 돈군 12명, 군선 2척이 배치되어 있었다. 1866년 병인양요 때는 양헌수 부대가 야음을 틈타 이 진을 거쳐 정족산성으로 들어가 프 랑스군을 격파하였으며, 1871년 신미양요 때는 로저스가 이끄는 미 극동함대와 치열한 포격전을 벌였던 곳이다. 이때 성첩과 건물은 모두 파괴되었고, 지금의 성곽과 문루는 1976년 복원해 놓은 것으로 1971년 12월 28일 사적 제226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강화도 덕진진의 공조루(控朝樓) 강화 덕진진의 공조루(控朝樓) 뒷편에 있는 강화해협 강화 덕진진의 공조루(控朝樓) 뒷모습 강화 덕진진. 남장포대와 덕진돈대 강화 덕진진의 남장포대(南障砲台) 남장포대의 저만치 끝의 높게 위치한 솔숲 사이로 덕진돈대(德津墩臺)가 보인다.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846번지에 소재하며 덕진진에 소속된 2개 돈대 중 하나이다. 북쪽의 광성보와 남쪽의 초지진 중간에 위치하여 강화수로의 가장 중요한 요새지이기도 하다. 신미양요(1871) 당시 미국함대와 48시간 동안 치열한 포격전을 전개하였는데 이 때 파괴되었던 것을 1977년 복원하였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포대이다 강화는 남·서·북 삼면에 아무런 방비시설이 없어 소홀한 감이 있었으나 1679년(숙종 5)에 유수(留守) 윤이제(尹以濟)가 돈대를 쌓아 방비하였다. 이 남장포대는 강화 9개 포대 중의 하나로, 1871년(숙종 5)에 축조되었으며 덕진진(德津鎭)의 관할하에 있었다. 포좌(砲座) 15문이 설치되었다가 파괴된 것을 1977년에 다시 복원하면서 조선시대 홍이포(紅夷砲)를 만들어 설치하였다. 강화 덕진진. 덕진돈대로(德津墩臺) 오르는 계단 강화 덕진진. 덕진돈대를 에워싼 솔숲 강화 덕진진. 덕진돈대의 출입구 강화 덕진진. 덕진돈대의 포砲진지 강화 덕진진 덕진돈대 강화 해협쪽에 세워져 있는 경고비(警告碑) 경고비(警告碑) 덕진진 남단 덕진돈대 앞(언덕아래)에 위치한 이 비는 조선 고종 4년(1867)에 대원군의 명에 의하여 강화 덕진 첨사가 건립하였다 한다. 개화여명기에 외국선박의 출입을 통제 하기 위한 경고비로서 비문에「해문방수타국선신물과(海門防守他國船愼勿過)」라고 음각되어 있으며 이는 어떠한 외국 선박도 함부로 이 해협을 통과할 수 없다는 쇄국의 의지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 경고비는 장대석의 지대 위에 1석의 기단을 만들어 그 위에 대리석 비신을 세웠으며 이 비의 크기는 높이 147cm, 폭 53cm, 두께 28cm이다. 이 경고비의 우측 상단과 하단부에는 탄흔의 흔적이 남아있다. 강화 덕진진의 경고비석에 새겨진 글: 해문방수타국선신물과(海門防守他國船愼勿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