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詩

쉽게 쓰여진 시 / 윤동주

담하(淡霞) 2019. 7. 31. 09:14
쉽게 쓰여진 시 / 윤동주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詩人)이란 슬픈 천명(天命) 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詩)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學費) 봉투(封套)를 받아 대학(大學)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敎授)의 강의(講義)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 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詩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時代) 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慰安)으로 잡는 최초(最初)의 악수(握手) 쉽게 쓰여진 시 작금의 현실 속에서 순수한 영혼의 최후의 보류같았던 예술의 세계마저 날마다 순수성을 잃고 오히려 괴기스럽고 난해하며 심지어 변태적인 성향에 집중해서 무참하고 처참하게 타락해가는 걸 누구나 절감하지 않을까 싶다 이젠 창작을 버젓이 돈 받고 가르쳐주는 곳이 성행하며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비딱하고 변태스럽게 보는 시선이 마치 천재의 광기인양 대접받는 위선적 사이비 지식인들이 난무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얼마 전 신춘문예를 대입이나 고시 준비하듯 일대일 공부하는 이들을 그것도 당선자들이 직접 가르쳐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그 여파가 아직도 가슴 아프게 남아있다 자신 안에 내재해있지 않는 천재적 광기나 재능으로 인해 일부로 고의적으로 세상을 비틀어보려 시도하는 건 아닐까? 그 지독한 자폐적 자학증과 절망적 허무감을 어떻게 감당해내고 살아갈 수 있는지 오히려 그들의 불안한 공허감이 가엾고 불쌍해 동정심까지 유발한다 그래서 더욱 현대문명의 사회구조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위선과 허식으로 명패를 만들어 꽁꽁 숨어서 행여 자신의 그러한 실재가 드러날까 두려워 더욱더 세상을 기이하고 변태적이며 괴팍하게 보려고 시도하는지도 모르겠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표현하기보다는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뒤틀거나 비딱하게 보는 걸 천재적 광기라고 간주하고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최대한 신비롭고 환상적이게 또는 기발하고 발칙한 은유를 사용해서 표현하는 게 천재적 창작이라고 여기는 공허한 자학적 지식인들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타락한 세상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들에게 자아실현이나 본질의 접근은 무조건적 맹목적 평범한 일상 비틀기에서 시작한다 타인의 평범한 시각을 거부한다 하지만 결국 그러한 시도는 천재의 광기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열등감의 발로가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든다 그리고 그들이 선별한 작품들 역시 허황된 위선에 자아 도취된 이들을 제외하면 거들떠 보지 않는 작품으로 사라져간다 물론 나는 결코 순진하거나 순수하지 못하다. 그렇다고 그들을 비판할 만한 능력도 없다, 따라서 그저 노파심이나 넋두리같은 푸념에 불과할지 모르겠다. 어쨌든 마지막으로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윤동주님의 詩 "쉽게 쓰여진 詩'로 마무리를 하려고 한다 윤동주님처럼 시를 광기나 변태성이 아닌 순수성으로 바라보고 자연스레 표현했을 때 비로서 진정한 천재가 출현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