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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너는 詩를 쓴다 ? / 유치환
서울 상도봉 산번지를 나는 안다
그 근처엔 내 딸년이 사는 곳
들은 대로 상도동행 뻐스를 타고 한강 인도교를 지나 영등포 가도를
곧장 가다가 왼편으로 꺾어지는데서 세번째 정류소에 내려 그 정류소
바로 앞골목 언덕배기 길을 길바닥에 가마니 거적을 깔고 옆에서 우는
갓난아기를 구박하고 앉아 있는 한 중년 사나이 곁을 지나 올라가니
막바지 상도동 K교회당 앞에 낡은 판자로 엉성히 둘러 가리운 뜰안에
몇 가구가 사는지 그 한 편 마루 앞 내 세째 딸년의 되는 대로 걸쳐 입은
뒷모습
─ 이 새끼 또 밥 달라고 성화할 테냐 죽여 버린다
─ 엄마 다시는 밥 안 달라께 살려 줘
그 상도동 산번지 어디에서 한 굶주린 젊은 어미가 밥 달라고 보채는
어린 것을 독기에 받쳐 목을 졸라 죽였다고
─ 이 새끼 또 밥 달라고 성화할 테냐 죽여 버린다
─ 엄마 다시는 밥 안 달라께 살려 줘
그러나 그것은 내 딸자식이요 손주가 아니라서 너는 오늘도 아무런
죄스럼이나 노여움 없이 삼시 세끼를 챙겨 먹고서 양복바지에 줄을
세워 입고는 모자를 얹고 나설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는 어쩌면 네가
말할 수 없이 값지다고 믿는 예술이나 인생을 골돌히 생각하는 것인가
그러나 이 순간에도 굶주림에 개같이 지쳐 늘어진 무수한 인간들이
제 새끼를 목 졸라 죽일만큼 독기에 질린 인간들이 그리고도 한마디
항변조차 있을 수 없이 꺼져 가는 한 겨레라는 이름의 인간들이
영락없이 무수히 무수히 있을 텐데도 그 숫자나마 너는 파적거리라도
염두에 올려 본 적이 있는가
그러나 한편으로 끼니는 끼니대로 얼마나 배불리 먹고도 연회가
있어야 되고 사교가 있어야 되고 잔치가 있어야 되고 --- 그래서
진수성찬이 만판으로 남아 돌아가듯이 국가도 있어야 되고 대통령도
있어야 되고 반공도 있어야 되고 질서도 있어야 되고 그 우스운
자유 평등도 문화도 있어야만 되는 것
─ 이 새끼 또 밥 달라고 성화할 테냐 죽여 버린다
─ 엄마 다시는 밥 안 달라께 살려 줘
그러므로 사실은 엄숙하다 어떤 국가도 대통령도 그 무엇도 도시
너희들의 것은 아닌 것 그 국가가 그 대통령이 그 질서가 그 자유
평등 그 문화 그밖에 그 무수한 어마스런 권위의 명칭들이 먼 후일
에덴 동산 같은 꽃밭 사회를 이룩해 놓을 그날까지 오직 너희들은
쓰레기로 자중해야 하느니
그래서 지금도 너의 귓속엔
─ 이 새끼 또 밥 달라고 성화 할테냐 죽여 버린다
─ 엄마 다시는 밥 안 달라께 살려 줘
저 가엾은 애걸과 발악의 비명들이 소리소리 울려 들리는 데도
거룩하게도 너는 시랍시고 문학이랍시고 이 따위를 태연히 앉아
쓴다는 말인가
청마는 위의 시를 씀으로 해서 당시의 정권에 도전했다는 명분으로
교직에서 물러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유치환 [柳致環, 1908.7.14~1967.2.13]
호 청마(靑馬). 경남 통영 출생.
극작가 유치진의 동생으로 통영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요야마[豊山]중학에서 4년간 공부하고
귀국하여 동래고보(東萊高普)를 졸업,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하였으나 1년 만에 중퇴하였다.
정지용(鄭芝溶)의 시에서 감동을 받아 시를 쓰기 시작,
1931년 《문예월간》지에 시 《정적(靜寂)》을 발표함으로써
시단에 데뷔, 그후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시작을 계속,
1939년 제1시집 《청마시초(靑馬詩抄)》를 간행하였다.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허무와 낭만의 절규 《깃발》을 비롯한
초기의 시 53편이 수록되어 있다.
1940년에는 일제의 압제를 피하여 만주로 이주,
그곳에서의 각박한 체험을 읊은 시 《수(首)》
《절도(絶島)》 등을 계속 발표하였다.
깃 발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海源을 向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자의 손수건,
純情을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理念의 푯대 끝에
哀愁는 白鷺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이 무렵의 작품들을 수록한 것이 제2시집 《생명의 서(書)》이다.
8·15광복 후에는 고향에 돌아와서 교편을 잡는 한편 시작을 계속,
1948년 제3시집 《울릉도》1949년 제4시집 《청령일기》를
간행하였고, 6·25전쟁 때는 종군문인으로 참가하여 당시의 체험을
《보병과 더불어》라는 종군시집으로 펴냈다.
그후에도 계속 교육과 시작을 병행, 중·고교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통산 14권에 이르는 시집과 수상록을 간행하였다.
그의 시는 도도하고 웅혼하며 격조 높은 시심(詩心)을
거침 없이 읊은 데에 특징이 있는데,
이는 자칫 생경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어떤 기교보다도 더 절실한
감동을준다. 제1회 시인상을 비롯하여 서울시문화상·예술원공로상·
부산시문화상 등을 받았다. 부산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사후에 그의 오랜 연고지인 경주에 시비가 세워졌다.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시조시인 이영도에게 보낸 사랑의 편지 중 200통을
추려 모은 서간집《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1967)가 있다.
행 복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는이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로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좋간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 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는이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했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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