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dwig Van Beethoven(1770-1827)
Piano Sonata No.17, Op.31-2 ‘Tempest’
베토벤 / 피아노 소나타 17번 ‘템페스트’
Daniel Barenboim, piano
Beethoven,
Piano Sonata No.17 in D minor, Op.31 No.2 ‘Tempest’
베토벤의 세 곡의 피아노 소나타 Op.31이
작곡된 시기는 베토벤에게 가장 암울했던 시기로
그 절정은 1802년 10월 6일에 작성한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라고 할 수 있다.
한 위대한 인간의 고립과 그로 인한
정신적 분열이 야기한 사건으로, 신이 자신을
보다 높은 임무를 위하여 선택했다는 신념 덕분에
베토벤은 이 위기를 극복해낼 수 있었다.
이 세 곡의 피아노 소나타로 구성된 Op.31은
자신에게 새로운 삶을 준 신에게 바치는
일종의 세 폭의 제단화와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16번 소나타인 Op.31 No.1에서 풍기는
그 지성 넘치는 우아함과, 18번 소나타인
Op.31 No.3에서 느낄 수 있는 생동감과 신선함은
가운데에 위치한 17번 소나타 Op.31 No.2의
그 우울에 대한 문학적 변용과 함께 어우러지며
이전과는 다른 전혀 새로운 콘텍스트를 통해
삶의 버거움에 대한 통렬한 인식과
아름다움에 대한 보다 자연스러운 접근,
생명과 창조력을 찬미하는 일종의 영웅주의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극적이고 대담한 악상의 소나타
이 가운데 ‘템페스트(Tempest)'
즉 ‘폭풍’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는 17번 소나타는
베토벤의 모든 작품 가운데 손꼽히는 걸작 가운데 하나로,
베토벤 사후 본격적으로 펼쳐질 낭만주의 시대에 대한
일종의 선지자적인 기념비라고 말할 수 있다.
어두움을 에너지 삼아 점차 증폭되는 강력한 힘과
액자의 한 장면을 묘사하는 듯한 회화적인 색채감,
너무도 자연스럽게 전개되는 스토리텔링적인 성격 등,
이 작품에 드러나는 음악적, 비음악적 요소 모두는
낭만주의 시대 작곡가들 모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특히 이 ‘템페스트’라는 제목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토벤의 비서이자 제자인 안톤 쉰들러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어느 날, 체르니의 집회장에서 선생님이 연주한
Op.31 No.2와 Op.57이 준 깊은 인상을 말씀드렸는데,
마침 선생님 기분이 썩 좋으셔서 이들 소나타는
어떻게 건반을 쳐야 하는가를 여쭈어보았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점이라면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읽어보게나’라고
말씀하셨다.”
이 증언이 신빙성이 높은 것이든 그렇지 않든 그 누구도
이 작품이 폭풍우와 이를 둘러싼 이야기가 펼쳐진다고
생각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진위나
문학적 개념의 상징은 오히려 부차적인 일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세 악장으로 구성된
이 단조 소나타의 구성을
제대로 파악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첫 악장의 음산하면서도 우아하며 암시적인 분위기,
두 번째 악장에서 펼쳐지는 감동적이고 순수하며
드라마틱한 이야기,
마지막 악장에서 펼쳐지는 강력한 회화적인 인상과
눈부신 기교로 구성된 세 개의 프로그램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Op.31의 세 개의 소나타가
이루고 있는 3부작 성격을 축소한
또 다른 3부작임을 자연스럽게 연상할 수 있다.
이렇게 복선적이고 다층적인 성격의 작품을 통해
베토벤은 당시의 복잡하고 참담했던 심경을
얼마간이나마 드러내놓고 싶어 했던 것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는데, 사실 스토리텔링보다는
새로운 음악 구조를 통해 베토벤은 더 많은 감정 표현과
더 높은 성취감을 투영해내고자 했음이 분명하다.
똑같이 비극 장르에 속하는 소나타라고 하더라도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에너지는 폭발적이라기보다는
소멸적이라는 점 또한 이 작품만의 특징이다.
23번 소나타 ‘열정’에서의 그 외향적인 발산과
직접적으로 비교하자면
이 ‘템페스트’ 소나타는 내향적인 수렴이
강하게 드러남을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 또한 모든 것을 덮고 새로 시작하려는
베토벤의 의지의 발로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미란다 - 템페스트>, 1916.
미란다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의 여주인공입니다.
1악장: 라르고 - 알레그로
이 소나타가 그때까지 작곡한 다른 소나타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단조의 화성으로 시작하는
라르고의 서주부도 아니고 환상곡 풍의
급격한 템포 변화도 아니다.
대범하면서도 독창적인
1악장 라르고 - 알레그로에서 나타나는 주제
그 자체가 형식을 자유롭게 만들어 가는 모습이
바로 이 소나타가 갖고 있는 위대한 면이라고 할 수 있다.
라르고에서 등장한 분산화음을 따라, 알레그로부터는
이와 동일하게 왼손이 주제 선율을 이끌어 가고 오른손이
이를 분해한 화음으로 뒷받침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렇게 A장조의 딸림화음이 서서히 아르페지오 혹은
명상적으로 진행되며 격정적이면서도 급격한
오른손의 음표들과 반응해 나가며 주제를 만들어 나간다.
베이스 라인은 제시부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만
재현부에서는 오히려 무책임할 정도로 드러나지 않으며
마치 페달링에 의한 레치타티보적인 효과가
현격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환상곡 풍의 요소들은 질주하는 듯한
회음 풍의 장식 음형들과 모차르트를 연상시키는
반음계로 인해 더욱 강조된 뒤 발전부로 넘어간다.
발전부는 꿈결 같은 아르페지오로 시작하며 폭풍이
다시 음침한 혼란을 야기하기 전까지 세 번 반복된다.
베토벤이 후기 작품에서 천재적인 표현 방식을 사용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인데, 이 작품에서도 이에 버금가는
충격적인 수법을 이미 사용했다.
한을 품은 듯한 두 번째 레치타티보 뒤에 재현부가
미리 시작하는 것으로,
발전부의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에피소드와
미리 등장한 재현부의 선율이 자연스럽게 중첩하는 모습은
정말로 새롭고 혁신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짧고 격렬한 폭풍이 지나간 뒤 재현부는
마치 폭풍우는 다시 되돌아올 것이라는 암시를 남기며
심연으로 조용히 침몰해 들어간다.
2악장: 아다지오
2악장 아다지오는 B플랫장조로 겉으로는 대단히 낭만적이지만
실제로는 혼란 전의 고요와 같은 이중적인 위압감을 전달한다.
Op.31 가운데 당시 베토벤의 심경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이 아다지오 악장은
따스하면서도 신성한 자비를 구원하는 듯한
간절한 기도가 담겨 있다. 그러나 반주부인
베이스 라인에 등장한 32분음표의 셋잇단음 장식이
마치 잔잔한 팀파니와 같은 효과를 내면서
오른손 멜로디에 어두운 색조를 간간히 덧칠한다.
특히 이 왼손의 장식음은
오른손 파트를 교차하여 담당하는 부분에 동일하게 등장하여
새의 울음소리와 같은 청명한 소리를 내며 저역에서와는
극단적으로 다른 효과를 자아낸다.
베토벤의 자조적인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부분으로,
같은 음형으로 성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베토벤의 천재성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두 번째 부분은 F장조의 평화로운 하이든적인 멜로디로 시작하며
조용하고 나지막한 G장조로 끝을 맺으며
폭풍의 눈 한가운데에 비견할 만한 평온함을 제공한다
3악장: 알레그레토
마지막 3악장 알레그레토는
짙은 안개 속을 빠르게 질주하는 듯한
양손의 펼침화음 음형으로 시작한다.
<엘리제를 위하여> 도입부와 같은 까닭 모를 비애감이
아름답게 수놓아져 있는 이 주제 선율을
슬픔의 질주로 표현할 것인지 아니면
모순된 것들의 덜그럭거림으로 표현할지는
해석가의 통찰력이 필요한 대목이지만,
체르니가 설명한 바대로 이 론도 악장의 리듬은
철갑옷을 입은 한 영웅이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을
반영한 것이라는 주장을 뒤집을 만한
이견을 제시하긴 힘들다.
더 이상의 대결과 부침, 열정은 남아 있지 않은
이 현실에서, 오직 단 하나의 화자만이
세상의 모든 고독감과 격리감을 껴안은 채
어디에론가를 향하고 있을 뿐이다.
빌헬름 켐프가 이 악장에 대해
“인간의 목소리(첫 악장)가 폭풍에 휩쓸려와
저 영원의 바다를 홀로 지배하게 되었다”라고
언급한 바 있듯이, 거칠고 날카로운 기교가 펼쳐진 뒤
등장하는 마지막 하행 스케일의 종결음이 울린 순간
체르니가 묘사한 그 기사는 안개 속을 뚫고
어딘지도, 언제인지도 모르는 곳으로 사라져버린다.
이반 아이바조프스키, <템페스트>, 1851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선의 마음을 유지하는 천사와
개선의 여지가 있는 악이 있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보여주었지만,
베토벤은 이러한 이분법적, 구원적 사고에서 벗어나
전혀 새로운 ‘고립된 개인’과 ‘절대 고독’이라는 화두를
피아노 소나타 ‘템페스트’에 담아냈다. 또 다른 의미에서
진정으로 위대한 극작가였던 베토벤의 정신은
이후 슈베르트의 후기 피아노 소나타를 통해 계승되어
베토벤과는 다른 감성적인 시인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Maria João Pires
Beethoven, Piano Sonata No.17 in D minor, Op.31 No.2 ‘Tempest’
Granja de Belgais, Portugal
추천음반
1. ‘템페스트’의 극적인 맥락과 명료한 스토리텔링은
1950년대에 접어들면서 현대 피아니스트들에 의해
완전하게 구현되었다. 가장 먼저 빌헬름 켐프의
마지막 전집 녹음(DG)은 독일적인 분절과
시적 상상력이 풍부한 표현력이 절정을 이루는 명연으로
그 위상이 높다.
2. 호르초프스키의 제자인 리처드 구드(Nonesuch)는
탐미적인 ‘템페스트’의 절정을 보여주고,
에밀 길렐스(DG)는 황금 옷을 입은 기사의
찬란한 비극을 보여주는 호연으로 적극 추천한다.
3. 마지막으로 현대적인 서정성과 낭만적인 시적 상상력,
감각적인 음색과 예스러운 정취를 동시에 머금고 있는
클라우디오 아라우의 연주(Philips)를 빼놓을 수 없다.
(박제성 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음악 전문지 <음악동아>,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피아노 음악>과
여러 오디오 잡지에 리뷰와 평론을 쓰고 있으며,
공연, 방송, 저널 활동, 음반 리뷰, 음악 강좌 등
클래식 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베토벤 이후의 교향곡 작곡가들>을 번역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기획물 전체>음악의 선율>
클래식 명곡 명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