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자료

라이너 마리아 릴케 와 루 살로메(Lou Andreas-Salomé) (Yearning Hearts)

담하(淡霞) 2022. 5. 29. 17:26
Yearning Hearts - Eternal Eclipse 내 눈을 감기세요 (Lösch mir die Augenaus)〉 내 눈을 감기세요.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으세요. 그래도 나는 당신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을 부를 수 있습니다. 내 팔을 꺾으세요. 나는 당신을 내 마음으로 잡을 것입니다. 내 심장이 멈추게 하세요. 그러면 내 머리가 고동칠 것입니다. 당신이 내 머리에 불을 지르면 그때는 내 핏속에 당신을 실어 나를 것입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 (Rainer Maria Rilke) ~~~~~~~~~~~~~~~~~~~~~~~~~~ 이 처절한 시는 천재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가 지은 〈내 눈을 감기세요(Lösch mir die Augen aus)〉라는 작품이다. 이 시에서 릴케가 애절하게 찾는 '당신'이 바로 루 살로메(Lou Andreas-Salomé)이다. 루 살로메는 나름대로 인정받은 작가이자 평론가였으며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개척자 중 한 사람이다. 하지만 저술이나 학문적인 업적보다는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한 철학자 니체(Friedrich Neitzsche)와 〈비가(悲歌)〉와 같은 명작을 남긴 시인 릴케를 절망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은 여인으로 훨씬 더 유명하다. 그녀의 본명은 루이자 살로메(Luíza Gustavona Salomé)로 1861년 2월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937년 1월 5일 卒) ~~~~~~~~~~~~~~~~~~~~~~~~~~~~~~~~~~~~~~~~~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처음 등장하는 남성은 네덜란드 출신의 루터교 목사인 길로트(Heinrich Gillot)였다. 루는 열일곱 살 때 무려 스물다섯 살이나 연상인 길로트 목사를 만났다. 당시 길로트는 유부남이었고, 황실에도 드나드는 대단히 유명한 목회자로 상트페테르부르크 사교계의 총아였다. 표면적으로 루는 종교에 대한 교육을 받으러 그를 매일 방문한 것이지만, 그녀는 그를 존경하고 사랑했다. 길로트는 그녀의 연인이자 스승이었던 것이다. 루는 맑고 푸른 눈과 오뚝한 콧날, 육감적인 두터운 입술, 조그마한 얼굴, 날씬한 몸매, 가는 허리, 긴 다리를 가지고 있어 절세가인은 아니라고 해도 기묘한 중성적인 매력을 뿜어내는 여인이었다. 아주 납작한 가슴만이 그녀의 유일한 단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길로트는 그녀에게 매료되었으며, 그녀가 원하는 대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그녀에게 쏟아 부었다. 신학, 철학, 논리학, 비교종교학, 불문학, 독문학에 대한 지식이 전수되었다. 길로트의 비극은 루를 성숙한 여인으로 오해했다는 사실이었다. 어느 날 길로트는 루에게 진한 키스를 했다. 그녀는 대단히 혼란스러워했다. 그날 루는 길로트가 부인과 이혼하고 그녀와 재혼할 준비를 오랫동안 해 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는 단호하게 결별을 선언했다. "나는 영원히 당신의 아이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루는 건강 문제로 이탈리아에 머무는 동안 철학자 파울 레(Paul Ludwig Carl Heinrich Rée)를 만난다. 당시 그는 스물두 살의 나이에 《도덕적 감각의 근원(Origin of the Moral Sensations)》이라는 철학서를 출판한 꽤 잘 나가던 사람이었다, 서른두 살이었던 파울 레는 루를 처음 만나는 순간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루 역시 그를 몹시 좋아했지만, 문제는 두 사람이 이성을 좋아하는 방식이 전혀 달랐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스물한 살이었던 루는 아직도 어린아이와 같은 존재였다. 루는 파울 레에게 자신은 이성에 대한 사랑은 완전히 닫혀 있다고 말했지만 파울 레는 그녀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서 괴로워했다. 루는 그에게 남녀의 관계보다는 '학문적인 공동체'로 지내자고 제안했다. 파울 레는 어떤 방식으로든 루와의 관계를 지속하고 싶었다. 두 달 후에 니체가 로마에 나타났다. 니체는 천재적인 철학자였다. 그는 스물네 살에 바젤 대학교의 철학과 주임 교수로 임용되었는데, 역사상 어느 누구도 그 나이에 철학 부문에서 이러한 위치까지 올랐던 적은 없었다. 니체가 루를 처음 만났을 당시 니체는 젊은 시절 그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쇼펜하우어의 '미학적 염세주의'의 그늘에서 막 벗어나 고유의 철학체계를 구축하던 시기였다. 루 역시 철학자 니체와의 만남을 크게 기대하고 있었다. 드디어 니체가 도착하고 루와 니체와 파울 레, 세 사람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나이로 보자면 니체는 파울 레보다는 다섯 살 위였고, 루보다는 열여섯 살 위였다. 이 세 사람은 루의 어머니와 함께 여러 달 동안 이탈리아 전역을 여행했다. 그러나 독일의 라이프치히에 도착해서 자리를 잡은 것은 루와 파울 레 두 사람뿐이었다. 니체는 루에게 끔찍한 저주의 말을 퍼붓고 그들과 결별했다. "조그맣고 나약하고 더럽고 교활한 여자, 가짜 가슴이나 달고 다니는 구역질 나는 운명." 무슨 일이 있었을까. 루와 함께 지내는 다섯 달 동안 니체의 정신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그는 그녀에게 완전히 빠져들어 실질적으로 경쟁 관계에 있던 파울 레에게 도움을 청할 정도로 처절하게 그녀에게 매달렸으나, 루는 육체적으로 남자와 사랑을 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루의 남편 안드레아스(Carl Friedrich Andreas)는 루를 둘러싼 여러 인물들 중에서 상식적으로는 가장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다. 그는 페르시아 문화에 정통한 베를린 대학교 언어학과 교수였다. 그는 자연에 대한 동경의 표현으로 채식만을 고집했고 맨발로 풀밭을 걸어다니곤 했다. 또한 감수성이 매우 예민한 사람으로 정서가 불안했고 가끔 발작적으로 분노를 폭발시키는 경우도 있었으며 항상 칼을 지니고 다녔다. 루가 안드레아스를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의사와 베를린 경찰은 루로부터 다급한 비상호출을 받았다. 그들은 루의 식탁에서 가슴 한복판에 칼을 꽂은 채 쓰러져 있는 안드레아스를 발견했다. 그는 루에게 청혼했고 그녀가 다른 남자들에게 제시했던 이유를 들어 거절하자 그 자리에서 칼을 꺼내 자신의 가슴을 찌른 것이었다. 아무리 당돌한 루라고 하더라도 당시 그녀의 나이는 스물여섯 살에 불과했다. 안드레아스의 자살 시도에 어지간히 놀랐던지 그녀는 '독신결혼'이라는 조건으로 그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섹스를 하지 않고 루와 다른 남자들과의 관계도 용인한다는 조건이었다. 안드레아스는 이 조건을 받아들였다. 사실 그는 루가 육체적으로 미성숙 상태라는 사실도 모르고 그녀가 제시한 조건을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루가 잠들었을 때 안드레아스가 그녀와 육체 관계를 시도하자 루가 그를 거의 죽일 뻔했던 사건이 발생하면서 루가 제시한 조건이 무척 진지한 것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 사건 이후 두 사람의 기묘한 결혼 생활은 무려 43년 동안이나 처음의 조건 그대로 유지되었다. 안드레아스와 루의 결혼으로 파울 레와 루의 관계는 끝장이 났다. 파울 레 역시 니체와 마찬가지로 절망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졌다. 한때 루와 함께 삼위일체를 이루었던 니체와 레의 인생은 절망과 고통으로 얼룩지고 말았다. 니체는 루와 헤어지고 나서 저술에 몰두해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선악의 피안(Jenseits von Gut und Böse)》, 《도덕의 계보(Zur Genealogie der Moral)》와 같은 불후의 명저들을 잇달아 출간했다. 그렇지만 그는 결국 자신을 극복해 차라투스트라와 같은 완전히 자유롭고 창의적인 '초인(Übermensch)'에 도달하지 못했다. 루는 그런 여자였다. 그녀는 남자를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으며, 그녀를 사랑했던 남자들은 그녀에게 집착하다가 그녀의 사랑을 잃고 나서는 심각한 정신적 타격을 입었다. 이러한 상황은 결혼 후에도 계속되었다. 루는 작고 볼품없는 몸매에 쉽게 부러질 것 같은 아주 가느다란 목을 가지고 있었지만, 남자들을 열광하게 하는 강한 마력도 있었다. 천재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역시 그녀의 덫에 걸려들었다. 루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의 나이는 서른여섯 살이었고 릴케는 열네 살 아래였다. 원래 그의 본명은 르네(Renee Maria Rilke)였는데, 루의 충고에 따라 '라이너'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시기에 루에게는 아주 중대한 변화가 나타났다. 그동안 소녀의 몸에 갇혀 있던 루의 육체가 눈을 떠서 비로소 진정한 여인이 된 것이다. 루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관계는 바로 그 시기에 시작되었다. 환희에 찬 시인은 노래했다. 그 길은 어떤 사람도 나보다는 먼저 밟지 못했으리. 나는 그대 안에 있노라. 서른여섯 살의 숫처녀. 감격한 릴케는 정열적인 시 수십 편을 써서 루에게 보냈고, 릴케의 편지를 안드레아스가 볼까 봐 기겁한 루는 그 주옥같은 시들을 찢었다. 그렇지만 자신이 쓴 글은 항상 복사본을 남겨놓는 것이 릴케의 버릇이었다. 그가 루를 위해서 쓴 시들은 후일 릴케의 시집에 고스란히 실렸다. 루와 릴케의 관계는 대략 3년 정도 지속되었으며, 그들의 러시아 여행에는 안드레아스가 동행하기도 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당신의 아내였던 이유는 나에게는 당신이야말로 유일하게 실존하는 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단호한 이별 통보를 릴케는 아무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 그는 곧바로 젊은 여류 조각가 클라라 베스트호프(Clara Westhoff)와 결혼했으며, 외동딸 루스(Ruth)를 낳았다. 릴케가 가정을 가지면서 안정되자 루와 릴케의 관계는 회복되었고, 그 이후 평생 동안 절친한 친구로 지내게 된다. 릴케는 간간이 정신착란 증상을 보이다 1926년 스위스에서 만성 백혈병과 종양의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임종 직전 그는 루에게 편지를 보내어 애절하게 그녀의 방문을 청했다. 루는 답장을 보냈지만 연인으로서가 아니라 정신분석 의사로서의 것이었다. 그녀는 그의 병이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라고 오해했던 것이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죽어가면서 오지 않는 루를 애타게 기다리던 릴케.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루는 그의 마지막을 지켜 주지 못했다는 뼈저린 회한을 가지게 되었다. 그녀는 2년 후에 릴케의 독자들이 그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그를 회고하는 짧은 책을 출판했다. 한국에서는 《하얀 길 위의 릴케》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지만, 원래 루가 붙인 제목은 무미건조하게도 《라이너 마리아 릴케》였다. 이 책이 영문판으로 번역되면서 붙여진 제목은 《오직 당신만이 나에게는 현실이었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그리며 (You alone are real to me. Remembering Rainer Maria Rilke)》였다. 루의 성격은 대단히 낙천적이었다. 니체의 사망 소식에 이어 파울 레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루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절망만을 안겨 주는 저주받은 존재가 아닌가 하고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으며, 이로 인해 한동안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안드레아스가 게오르크 레데부어를 질투해서 발작을 일으켰을 때에 두 사람은 동반자살을 계획하기까지 했지만, 타고난 낙천적인 성격 덕분에 빠른 시간 내에 극복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루가 최종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분야가 당시로는 새로운 개척지였던 정신분석학이었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을지 모른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루보다 다섯 살 위였다. 삼십 대였던 1880년대 말부터 잠재의식이 인간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기 시작해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으며, 몇 년 지나지 않아 이 분야의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정신분석과 관련된 그의 첫 번째 논문 〈히스테리에 관한 연구(Studien über Hysterie)〉가 1895년에 발표되고, 이어서 유럽 사회에 다윈의 《종의 기원》만큼이나 충격을 주었던 《꿈의 해석》이 1899년에 출판되면서 그는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프로이트의 저서 《꿈의 해석》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당시 유럽에서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그의 문하에는 당대의 뛰어난 인재들이 몰려들었다. 이들 중 가장 초기 멤버에는 후일 프로이트만큼이나 명성을 얻게 될 칼 융(Carl Gustav Jung)이 있었으며, 아버지의 천재성을 그대로 이어받아 후일 그를 계승하게 될 막내딸 안나(Anna Freud)도 스무 살 전후에 이 연구 그룹에 합류했다) 루는 그동안 많은 연인들을 만들고 버렸지만, 프로이트에 대해서만은 30년 전 니체에게 대하듯이 접근했다. 지적인 교감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프로이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루와 프로이트의 지성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충돌했다. 그들은 만나자마자 서로에 대해서 아주 빠르게 분석을 완료했다. 이 분야의 전문가인 프로이트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루는 프로이트를 완벽하게 분석했다. 말년에 프로이트는 루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토록 빨리, 그토록 훌륭하게, 그토록 완벽하게 나를 파악한 사람은 만나 보지 못했다. …… 니체는 그녀가 악마 같다고 했는데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한편 루의 남편 안드레아스는 오로지 인내와 관용이라는 미덕으로 루와의 결혼 생활을 유지했다. 영원히 소녀로만 살 것 같던 루가 삼십 대 중반의 나이에 육체적인 사랑에 눈을 뜨고 그 이후 갑자기 대책 없는 바람둥이로 바뀌었지만, 안드레아스는 전혀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그는 루가 화려한 남성 편력을 자랑하던 시기에도 굳건하게 그녀의 주변만 맴돌았을 뿐이다. 사실 자유분방한 루에 대해서 안드레아스 역시 반격을 가했다고 할 수 있지만, 그의 복수는 상당히 치졸했다. 그는 하녀인 마리 슈테판(Marie Stephane)과 바람을 피웠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다. 루는 마리 슈테판에게는 크게 분노를 터뜨렸으나 그녀가 낳은 아이 마리센(Marisen)은 끔찍하게 사랑했다. 후일 안드레아스가 죽고 나서 루는 마리센을 정식으로 입양해 자신의 딸로 삼았다. 안드레아스는 루의 인생에서 대부분의 기간을 철저한 아웃사이더로 일관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무렵 루는 안드레아스의 곁으로 돌아왔다. 루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예순 살쯤 되었을 때 성적 욕구에서 벗어났다고 했다. 대략 이 시기부터 루와 안드레아스 부부는 서로를 이해하는 충실한 동반자가 되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흐른 뒤였다. 안드레아스는 이미 귀가 먹어가는 노인이 되어 있었다. 루는 그와 이야기하기 위해서 악을 쓰다가 점차 편지로 의사소통을 해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루의 건강도 그리 좋지 않아서 여러 곳에서 이상신호를 보내기 시작했고, 1929년에는 사소한 수술을 받기 위해 괴팅겐 병원에 입원했다. 그녀가 입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안드레아스도 같은 병원에 입원했다. 여러 가지 증세가 뒤섞인 노인성 질환의 합병증이었다. 그는 걸어서 병원 문을 나서지 못했고, 여러 달 입원해 있다가 다음해 초 여든다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루는 그 마지막 몇 달 동안 자신이 어떤 남자와 함께 살아왔는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안드레아스는 날카로운 칼과 불안한 정신을 가지고 있던 위험한 남자였지만, 진정한 안드레아스는 넘치는 기품과 고결한 인격의 소유자였으며 동료들과 제자들로부터 깊은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던 사람이었다. 루는 안드레아스가 죽기 전 몇 달 동안 남편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진정한 아내였다. 루 살로메는 수많은 소설을 발표하고 꽤 많은 독자를 가졌지만, 그녀의 중요한 업적은 대부분 평론 분야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녀는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인형의 집》으로 유명한 노르웨이 출신의 극작가 입센(Henrik Johan Ibsen)23) 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을 분석하여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녀가 출간한 니체와 라이너 마리아 릴케에 대한 비평서도 그들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상당히 중요한 자료들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문학적인 업적에도 불구하고 루에게는 니체와 릴케와 프로이트를 매료시켰던 인물이었다는 이미지가 훨씬 더 강렬하게 남아 있다. 루는 말년에 자신의 회고록인 《회상(Lebensrückblick)》을 통해 이 대가들과의 관계를 상세하게 밝혔고, 이들과 주고받은 수많은 편지들을 고스란히 남겨 놓았다. 때문에 그녀의 일생은 지금도 완벽하게 재구성할 수 있을 정도이다. 당시의 루 살로메는 뛰어난 지성과 신비한 미모로 사람들을 매혹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뮤즈(muse)' 그 자체였다. 특히 니체와 릴케라는 두 천재에게는 더욱 그랬다. 비록 15년 정도의 시간 차이가 있지만, 이들에게는 기이하게도 루에게 차이고 나서 정확하게 아홉 달 후에 각자 일생일대의 최고 걸작들을 완성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녀는 그들에게 영감을 주었을 뿐 아니라 그들을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그렇지만 루의 마력은 영원하지 않았다. 시간은 그녀에게도 공평하게 작용했다. 안드레아스를 잃고 나서 루는 급격히 쇠약해져 갔다. 골절상과 허리의 통증, 그리고 유방암이 이어졌다. 그렇지만 그녀의 터무니없는 낙관주의는 여전했다. 유방절제수술을 받고 나서 그녀는 태연하게 말했다. "니체가 옳았어. 지금 이렇게 가짜 가슴을 달고 있잖아." 그렇지만 루는 전쟁의 공포에서 쉽게 벗어났다. 유럽에 불길한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던 1937년 1월 5일 그녀는 괴팅겐의 자택에서 요독증으로 사망했다. 잠을 자다 맞이한 편안한 죽음이었다. 루의 유해는 화장되었고, 재는 안드레아스의 곁에 묻혔다. 루 살로메는 그 시대의 기준으로 보나 현대의 기준으로 보나 대단히 이질적인 존재였다. 그녀는 분명히 페미니스트였고 '능력을 가진 여성의 행복'을 강조했다. 그렇지만 그 시대를 풍미하던 여성 해방론자는 아니었다. 이른바 '여성의 해방'을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집요한 질문에 대해서 그녀는 극히 이단적인 대답으로 그들의 기대를 무산시켰다. "나는 여자로 태어난 것에 대해 대단히 감사한다." 루 살로메는 '여성'으로 생을 산 인간이 아니라 '인간'으로 생을 살았던 여성이었다. 남성들을 압도하는 지성과 순수한 소녀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천국과 지옥을 차례로 선사해 주는 절망의 뮤즈. 이것이 당시의 사람들이 본 루 살로메의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겉으로 보이는 천진무구한 낙천주의와는 달리 루는 치열한 내면적인 투쟁을 지속했던 사람이다. 그녀는 평생 '인간을 저버린 잔인한 신'을 그리워하며 그와의 대화를 모색하던 진지한 철학자이었으며, 동시에 오직 자신만이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인간이었던 것이다. H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