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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의 술마시는 풍속 -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中

담하(淡霞) 2024. 3. 30. 07:33
우리나라 사람들의 술마시는 풍속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中) 술마시는 풍속은 세상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험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술배는 너무 크서 반드시 이마를 찌푸리며 큰 사발의 술을 한번에 들이킨다 이는 들어붓는 것이지 마시는 게 아니며 배부르게 하기 위한 것이지 흥취로 마시는게 아니다 그러므로 술을 한번 마셨다하면 반드시 취하게 되고 취하면 바로 주정을 하게 되고 주정을 하면 즉시 싸움질을 하게되어 술집의 항아리와 사발들은 남아나질 않는다 풍류와 운치라고는 눈곱 만큼도 없다 그리고선 오히려 중국식으로 술을 마시면 전혀 배부르지 않다며 비웃는다. 지금 이 호사스런 술집을 압록강 동쪽으로 옮겨 놓는다면 아마 하룻밤도 지나지 않아 그릇과 골동품을 두들겨 깨고 아름다운 화초를 꺽고 밟아 버릴 것이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 연암 박지원 (1737.3.5~1805.12.10 ) 조선후기 문신. 실학자. 사상가. 외교관. 소설가. (소설 : 허생전. 양반전. 호질(虎叱)등...)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 연암 박지원의 열하여행은 삼종형 박명원이 정사로 임명되어 갔던 1780년 당시 청나라 황제였던 건륭제의 칠순을 축하하기 위한 진하(進賀) 겸 청나라 정책이나 외교적 처사에 감사의 뜻을 표하는 사은(謝恩) 사행(使行) 이었다 이들은 17850년 5월25일 한양을 떠났다가 같은해 10월 27일에 서울에 도착했다 ※ 위글은 丙寅日8월20일 연암 박지원이 중국에서 주점에 들렸다가 느낀 소회를 발췌 한 것이다 연암 박지원은 시시때때로 술을 마셨다는 기록을 스스로 남긴것을 보면 애주가 였던것 같다 한번은 한 주점에서 낮선 조선여행자를 깔보는 듯한 중국인들 앞에서 일부러 중국식 밤톨 만한 잔을 치우게 하고 큰 대접으로 순식간에 3잔이나 벌컥벌컥 들이켜 주점에 있는 중국인들의 기를 죽였다는 기록을 보면 아마도 그는 말술의 진정한 애주가 였던것 같다.. ( 담하 ) 술이 빚은 우정은 술처럼 하룻밤 밖에 가지 못한다 (F.V 로기우) Shab Bood Biaban Bood - Farid Farj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