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은 다수의 유전자가 관여한다!
성격은 유전적으로 타고난다 !
성격과 지능뿐 아니라 각종 질병의 발생과 진행에 유전자가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들이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생활해나가는데
유전적 정보가 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백지에는 어떤 얼룩도 없기 때문에, 그 위에는 가장 새롭고
가장 아름다운 말들이 써질 수 있고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질 수 있다.”
모든 인간이 서로를 위하는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이상을 품었던
중국의 혁명가 마오쩌둥의 말이다. 그는 문화혁명을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하려 했지만 결국 6천5백만명이 희생된 채 혁명은 실패로 끝났다.
공산주의자들만이 이런 믿음속에서 살았던 것은 아니다.
20세기 중반, 미 하버드대 스키너 교수가 이끄는
행동주의 심리학이 등장하면서 아동심리학자와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인간의 행동특성이 환경에 의해 형성되고,
자녀들의 성격이 부모의 양육방식에 따라
원하는 대로 고쳐질 수 있다는 믿음이 팽배했다.
인간은 태어날 때 ‘빈 서판’(blank slate),
즉 백지상태라는 이런 주장들은
선천적인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보다 왠지 도덕적으로 느껴진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강조하며 인종청소를 통해
우생학을 극단으로 밀고 나갔던 나치즘의 잔상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주장처럼 사람의 성격이나 지능은
정말 적절한 환경을 조성해주면 얼마든지 바꿔나갈 수 있을까?
자식들을 키워보거나 아이들을 가르쳐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그렇지 않음을 인정할 것이다.
실제 과학적 연구 결과들은 개인의 성격이나 지능에 미치는
유전적 영향력이 상당함을 보여주고 있다
유전 영향 밝힌 쌍둥이 연구
당시 심리학 정설과 너무나 다른 결과에 충격을 받은 부샤드는
이후 본격적으로 쌍둥이 연구를 진행해 특히
성격에 유전적 영향이 강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부샤드는 “처음 연구를 시작했을 때 나는 이런 특성이
유전자의 영향을 받는다고 믿지 않았다”며
“그러나 결국 증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성격은 크게 5가지 독립된 주요 특성으로 나눠진다.
즉 지적 개방성(openness to experience),
성실성(conscientiousness),
외향성-내향성(extroversion-introversion),
적대성-친화성(antagonism-agreeableness),
정서안정성(neuroticism) 등의 기준으로,
각 단어의 첫글자를 따 오션(OCEAN)이라고 부른다.
연구 결과 5가지 특성 모두 성격 편차의 40% 정도가
유전적 영향의 결과이고 가정환경의 영향은
10% 이내인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50%는 질병이나 사고,
친구 등 개인적인 특수 환경이 차지했다.
이런 결과는 어린 시절 경험이 성격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프로이트의 이론과도 배치된다.
습관적인 거짓말이나 도벽도
아이 때 입은 정신적 충격의 결과라기 보다는
대부분 유전적 소질 때문으로 보고 있다.
미 하버드대 언어심리학자 스티븐 핑커 교수는
그의 저서 ‘빈 서판’에서 “유전학과 신경학은 어두운 마음이
항상 부모나 사회탓이 아님을 입증한다”고 주장한다.
범죄성향과 유전자가 관련이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X 염색체에 있는 MAOA 유전자가 그것.
이 유전자는 활성이 높은 타입과 낮은 타입이 있다.
활동이 낮은 유전자형을 갖는 사람들은 공격성이 높은데
품행이 불량한 청소년들과 반사회적 성격장애 성인들에서
흔히 발견된다.
흥미롭게도 유전자의 타입에 따라 환경의 영향력에 차이가 나타난다.
MAOA 활동이 높은 유전자형은 어릴 때 학대를 받고 자라더라도
나중에 성격장애나 폭력성을 거의 보이지 않는 반면,
활동이 낮은 유전자형은 커서 폭력범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다.
성격 형성엔 다수의 유전자 관여
장형유전자를 갖는 사람은 좀더 큰 자극을 얻기 위해 모험을 즐기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또 바람을 피우는 성향이 강하며 알코올이나 약물에 중독되기 쉽다.
담배를 끊기 어려운 사람은 유전자를 의심해볼만 하다.
지나치게 근심걱정이 많은 성격도
유전자와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1996년 독일 뷔르부르크대 정신과 레슈 교수팀은 17번 염색체에 있는
세로토닌 운반체(5-HTT) 유전자를 억제하는 DNA의 길이가 짧은 사람이
이런 성향일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런 사람들은
남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경향이 있어
사교모임에서도 잘 어울리지 못한다.
물론 하나의 유전자가 성격을 좌우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새로움을 갈망하는 성격의 원인 가운에
D4DR 유전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4% 이하다.
결국 성격의 유전적 측면은
수많은 유전자가 관여해 상호작용한 결과다.
그렇다면 성격 형성에
유전적 요인이 중요하다는 사실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일까?
많은 부모들은 자식의 성공과 행복이 자신들의 손에 달려있다고 믿고 있다.
잘못 해서 혼을 내도 혹시나 아이의 성격이 비뚤어지지 않을까 전전긍긍이다.
맞벌이 부모의 경우 아이와 놀아주는 시간이 부족한 것에 대해 늘 죄의식을 갖는다.
그러나 아동학대 같은 극단적인 경우가 아닌 이상 부모의 태도는
자녀의 성격 형성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타고난 성격을 억지로 바꾸려는 노력도 별 효과가 없다.
소심한 성격의 사람에게 부끄러움을 없앤다고
길거리에서 소리를 지르게 하는 것 같은 방법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영국의 과학저술가 매트 리들리 박사는 그의 저서 ‘게놈’에서
“사람의 기본 성향을" 병으로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최고의 선택”이라며
“소극적인 면을 타고났다고 말해 주는 것이
소극적인 것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쓰고 있다.
수줍음은 신경계의 흥분조절능력의 결핍에 기인한다.
따라서 부담이 적은 관계를 맺을 기회를 통해
조금씩 적극성을 배우는게 더 바람직한 방향이다.
이혼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성격차도
이런 면에서 접근하면 좀더 너그러울 수 있다.
배우자의 나쁜 버릇이 어느 정도 타고난 것이며
바꾸기가 어렵다는 것을 받아들인 뒤
해결책을 모색하면 갈등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사례가 많다.
열악할때 환경 영향이 더 커
한편 상황에 따라서는 환경이 성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태어나자마자 어미와 헤어져 혼자 자란 생쥐는
신경이 예민하고 커서 새끼를 낳아도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
사람의 경우도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극단적 조건"에서는 유전자보다는
환경이 성격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환경이 좋아질수록 역설적으로 그 영향력은 작아진다.
유전자가 자유롭게 발현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범한 가정의 사소한 차이가 성격 형성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이런 현상에 대해 매트 리들리 박사는 지난해 펴낸 책
‘양육을 통한 본성’(Nature VIA Nuture)에서
“가정이란 환경은 결핍되면 질병에 걸리지만 어느 수준이 넘어가면
건강증진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 비타민C와 같다”는
멋진 비유로 환경의 영향을 설명하고 있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인간은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지만,
의지로 의지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사람마다 고유한 성격을 억지로 바꾸려하지 말라는 말이다.
“이런 경구는 딱딱해지기 쉬운 책임감을 부드럽게 누그러뜨려서,
우리가 자기 자신이나 남들에게 너무 엄격하게 굴지 않도록 해준다.
그래서 유머를 즐길 수 있는 인생관을 갖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쇼펜하우어를 좋아했던 아인슈타인의 말이다.
서로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각자의 취향에 따라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될 때
많은 사람들이 행복할 삶을 살지 않을까.
아침형 인간도 유전자가 맞아야
그런데 수면패턴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가 최근 밝혀졌다.
뇌에서 생체시계를 관장하는 부분을 작동시키는데 관여하는
Per3 유전자가 그 주인공. 영국 서레이대 시아몬 아처 박사팀은
올빼미족은 종달새족에 비해 이 유전자가 짧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루주기 생체시계가 24시간보다 긴
수면지연증후군(DSPS) 환자를 조사한 결과
75%가 짧은 Per3 쌍을 갖고 있었다.
결국 짧은 Per3을 갖고 있는 사람이
억지로 아침형 인간이 되려고 했다가는
하루 종일 몽롱한 상태로 보낼 확률이 높다.
물론 수면 패턴에는 주변환경이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이지만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자신의 신체리듬을 거슬러가며
억지로 바꿀 필요는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