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tz] Sergei Konovaltsev & Olga Konovaltseva
우리나라 Ballroom Dance 유래와 Dance Sports
1. 우리나라의 볼륨댄스(Ballroom Dance)
우리나라에 볼륨 댄스가 들어온 것은
구한말 고종 황제 때 서울 주재
러시아 공사에 의해서 였다고 전해지며,
최초로 댄스를 춘 한국 사람은 1890년경
구한말 외부대신 이하영(李夏榮)씨가
미국공사 재임 시에 다소 느린 3/4 박자의
보스톤 왈츠(Boston Waltz)를 추었다고 한다.
그후 귀국 후 에도 서울 종로에 있는
“손탁 호텔”에서 종종 사교춤을 추었다고 한다.
1920년대 일본과 소련에서 돌아온 유학생들이
종로 황성 기독청년회(현 YMCA)에서
시범을 보인 것이 그 시초 일 것이며,
예전에는 춤에 대한 전문교사가 없었고
1930년대 일제 강점기에
쇼 안무가 였던 윤은석씨가 일본에
자주 왕래하며 춤을 배우고,
당시 “영국왕실무도협회”에서 발간한
“Book Dance"라는 책으로 독학 하였다고 한다.
서양의 트로트(Trot) 지터벅(Jitterbug)은
도롯도. 지르박,이라고 발음하는 일본을 통하여
해방 후에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그대로 사용되었다.
해방이 되어 미국군인들의 영향을 받아
서양 춤을 다른 문화의 경우와 같이
무비판적으로 받아 드리게 되었으나,
자유당 시대를 거치게 되면서
고위 장성급 모임에서 사교댄스 파티가
부부동반으로 건전하게 행하여 졌다고 한다.
그러나 6. 25 동란이 끝난 혼란한 시국인
1954년경에는 소설가 정비석씨가 춤으로 빚어지는
잘못된 사회상을 표현한 소설
“자유부인”을 서울신문에 연재 할 만큼
여러 가지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1950년대 중반에는 소위 양춤으로 불리던
댄스 바람이 대중 깊숙이 파고들어
유행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시 아무런 준비 없이 받아들인
맹목적인 자유사상과 맞물려 댄스가
여러 가지 부작용을 일으킨 것도 사실이다.
60년대를 지나 70년대를 접어들면서
일부 댄스인중에 서양풍의 사교댄스를
문화인답게 슬기롭게 배워 여가 선용을 위한
건전한 스포츠로 발전 시켜야 한다는
자각이 일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 댄스스포츠(Dance Sports)의 의미[意味]
홀과 같이 넓은 공간에서 추는 춤인
볼륨댄스(Ballroom Dance)를
스포츠 종목의 관점에서 부르는 명칭
불륨댄스는 사교춤(Social Dance)과
스포츠 댄스(Sports Dance)로 나뉘며
스포츠 댄스는 다시 경기용(Competition)과
시범용(Demonstration Dance)으로 구분된다
종래에는 스포츠댄스 라는용어가 사용되기도 했으나
1980년대 이후 국제올림픽위원회 가입을 추진하면서
볼륨댄스(Ballroom Dance)라는 표현을 대신할수 있는
댄스스포츠Dance Sports) 라는 용어를 만들어
회원국 사이에서 사용하고 있다
( Web자료 발췌)
(Waltz)Benedetto Ferruggia & Claudia Koehler